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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목사님 설교집

두 문과 두 길의 결과

윤봉원 2015.05.01 14:37 조회 수 : 673

86-10-15 수새마 7:13-14날자: 1986년 10월 15일 수새
제목: 두 문과 두 길의 결과
본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기도합시다.
육의 연약한 것을 체휼하시는 주님, 오늘 아침에도 작정한 마음 있었으나 또 약하여 넘어지고 유혹받아 넘어지고 악령의 몰아치는 환경으로 인하여 넘어지고 있는 모든 성도들, 평생 처음 만나는 첫날 첫 시간 주님 만나 할 일 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인 것을 저들이 더욱 깨닫게 하시고 깨달은 자들은 양보나 빼앗기지 않고 실행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는 세상을 가진 자가 악령이오니 인간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고 세상을 이긴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만이 이를 다 이길 수가 있음을 압니다. 주님의 피 없는 자는 세상에게 정복을 당하지 아니할 수 없고 그 왕권에게 사로잡히지 안할 수가 없고 다만 주의 피공로의 능력과 영감과 진리의 능력으로만 이길 수 있는 것을 저들이 확실히 알고 또 믿습니다.
이 시간도 깨워 주시고 이 자리에도 주님이 오셔서 온갖 원죄와 본죄로 사이비한 모든 삐뚤어진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이요 저희들 속에도 삐뚤어진 것이 가득 차 있는 원죄 요소와 본죄의 요소가 관영하여 있는 저희들을 주님이 살려 주셨사오니 빛이 와서 발하고 있으나 아직도 구석구석에 어두운 것이 가득 쌓여 있는 저희들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주님의 피와 성령의 감화와 진리의 빛이 오셔서 우리 안에 어두운 것을 다 몰아내 주시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의 요소 곧 진실과 거룩과 온전만이 우리 속에 소생되고 또 구비되고 또 성장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구름타고 오실 주님 맞이할 때에 아무런 도적맞을 것이 없고, 아무런 깎일 것이 없고, 아무런 거리낄 그 모든 밧줄을 다 끌러서 자유하여 주님이 피난시킬 때에 그때에 자유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져 가는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 두 문과 두 길이 현실에 있다.
1.1. 개인, 가정, 교회 모두에게
우리 앞에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과 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 이 두 문, 두 길, 생명길과 멸망길, 좁은 길과 넓은 길, 넓은 문 넓은 길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고 좁은 문 좁은 길은 생명으로 가는 길이요 문입니다.
자기 개인도 그러하고, 또 가정도 그러하고, 교회도 그러합니다, 자기 개인만이 아니고. 자기가 현재 어떻게 복 있는 자리에 서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새로운 발견, 문은 새로 시작하는 거 새로운 발견 그것을 가리켜서 문이라 말한 것입니다. 새로운 발견, 새로운 시작, 새로운 깨달음, 새로운 소원, 새 소원, 새 깨달음, 또 새로운 시작, 새로운 행위, 무엇이든지 새로 하는 것을 가리켜서 여게 문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문. 문을 열어야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넓은 문은 척 열면 그 길이 평탄해서 사람들이 그 문을 열고 난 다음에는 좋아서 달음질하고 그 문에서 나올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아주 좁고 험한 그 길은 문을 척 열고 보니까 그 길은 아주 좁고 험합니다. 험하니까 사람들이 얼른 문을 닫아 버리고 그만 도망쳐 버려. 문을 닫아 버리고 도망치고 후퇴를 합니다. 이것이 개인 신앙, 가정 신앙, 또 그 교회의 신앙, 또 그 교파의 신앙, 또 시대 신앙, 또 지역 신앙인 것입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크기 때문에 그렇게 아무나따나 그래 들어 가지고는 다 헛일입니다. 그저 예사롭게 아무나따나 들어서 버려도 되고 가져도 되는 것 아니고 가지면 생명이요 버리면 멸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교회가 오늘까지 어떻게 잘 나왔다 할지라도 그 교회의 신앙을 인도하는 인도자, 교역자, 교역자가 문을 여는데 그 문을 바로 열면 그 교회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좀 더 깨끗해질 수 있고, 온전해질 수 있고, 그 교역자가 깨달음이 하나 잘못되면 온 교회는 그만치 더러워지고 썩어지고 후퇴하는 것입니다.
또 그 가정이 그저 오늘까지는 잘 나왔다 할지라도 그 잘 나온 거게서 항상 그대로만 잘 나가면 되느냐 하면 아닙니다. 요거 어려운 말인데 여러분들이 잘 들어야 돼요. 잘 나왔는데, 신앙생활을 잘 해 나왔는데 그대로만 나가면 되느냐 하면 그것을 가리켜서 앉은뱅이 신앙이라 합니다. 알겠습니까? 앉은뱅이 신앙.
그러면 어째야 되는가? 오늘까지 잘 나온 것은 이제까지 온 걸음을 잘 바로 걸었다는 말인데 그거 가지고, 거기가 주님 계시는 곳이 아니라. 주님을 만날 때까지 자꾸 걸어가야 돼요.
온전을 향하여 걸어가고, 완전을 향하여 걸어가고, 깨끗을 향하여 걸어가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부정한 것을 하나씩 둘씩 고쳐가며 걸어왔으니까 잘 걸어왔지마는 앞으로 고칠 것이 많이 있다 그거요. 그만 그것으로써 다 됐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젊은이 신앙이라 이렇게 상징했습니다, 젊은이 신앙이라.
젊은이는 크지도 안하고 줄어지지도 안하고 그대로 현 상태대로 계속하고 있는 것이 젊은이 신앙이오. 또 늙은이 신앙은 뭐입니까? 늙은이 신앙은 차차차 키도 줄어지고, 체중도 줄어지고, 힘도 줄어지고 모든 것이 줄어집니다. 그것을 늙은이 신앙이라 그렇게 우리에게 알기 쉽도록 해서 상징적으로 가르쳤습니다. 또 아이 신앙은 뭐입니까? 아이 신앙은 보다 자라가는 것입니다. 회개도 좀 더 깨끗해지고, 좀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좀 더 하나님에게 충성하고, 요렇게 점점 깨끗해지는 거, 또 온전해지는 거, 요것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새 일인 것입니다.
1.2. 새일교회의 경우
이래서, 마귀란 놈은 일찍부터 요 은혜의 길을 가로막기 위해서 마귀는 무슨 일을 작용하고 있느냐 하면은 새일교회라고 이단을 만들어 냈습니다, 새일교회. 새일교회, 새일교회라고 이단 만든 것은 새일교회가 그렇게 많이는 퍼지지를 못했지만 ‘새 일 한다’ 이래 가지고 새일교회라는 그 교회를 만들어 그 교회가 완전한 이단입니다.
이단인데, 이래서 무엇이든지 새로와진다. 새 길 걸어야 된다, 새로 새 문을 열고 들어가야 된다, 또 새 일을 시작해야 된다 이라면, ‘아, 그거는 이단이 아니냐? 그 새일교회라는 이단이 있지 않느냐?’ 그래서 뭐든지 새로와지는 거, 새로와지는 거, 온전해지는 거, 전진되고 향상되는 거, 새로운 깨달음, 새로운 시작, 새로운 역사, 새로운 기쁨, 새로운 소망, 이제 과거 것이 아무리 좋은 거 바른 걸 해 놨다 할지라도 거게다가 또 좋은 것을 더 보태야 되고, 또 지금까지는 바른 길을 걸어왔다 할지라도 거게서 또 앞으로 걸어가야 됩니다. 전진해야 됩니다.
또 이제까지 깨달은 것이 바로 됐다 할지라도 그게 전체적으로 바로 됐다 말이 아니고 이제까지는 깨달은 것이 하나든지 둘이든지 그거는 바로 깨달았지마는 거게서 남은 깨달음을 자꾸 더 바로 깨달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1.3. 빌라델비아교회의 경우
이러기 때문에 문은 새로운 그 깨달음과 시작과 출발, 또 새로운 일, 새로운 소망, 무엇이든지 새 것을 발견하는 것이 그것이 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그게 문인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너희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 그 말은 문 하나가 있는데 그 문 하나를 들어가는데 그 안에 또 문이 있고 또 문이 있는데 그 문을 주욱 이렇게 들어갈 수 있고,
또 “아무도 닫을 사람이 없다” 네게 앞에 새로운 깨달음으로 주욱 자꾸 한 칸 더 들어가고 한 칸 더 들어가고 한 칸 더 들어가는 그 문을 들어가도록 주님이 그와같이 해 주셨기 때문에 아무도 방해하지를 못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자에게 그렇게 좋은 문을 자꾸 열어서 문 한 칸 들어가고 한 칸 들어가고 자꾸 들어갈 수가 있는가? 거게 말하기를 “네가 여간한, 연약한 힘을 가지고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이랬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이 사람을 성하게 했다는 그 이름과 같은 이름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에게는 열린 문이 있습니다. 거게 유대인이라고 하는 그말은 정통 신앙이라고 말하는 그런 자들이 있으나 이들은 사탄의 회다. 바른 길은 뭘로 바른 길을 가는 거냐? 자기에게 있는 힘대로, 없는 거 말고 있는 대로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대로 지킬라고 힘쓰면, 뭐이 됩니까? 아는 대로 하나님 말씀을 지키면 무엇이 된다고 했습니까? “참 내 제자가 되고” 성경을 알아야, 성경대로 믿어야 되지, 지금 우리 교회가 한 마디가 생길 때가 온 거 같습니다. 성경대로 믿어야 되는데 성경에 이탈되는 그런 지금 운동들이 우리 교회 안에 많이 버글버글 괴고 있습니다. 그게 좋습니다. 그럼으로써 깨끗해질 자는 깨끗해지고 또 더러워질 자는 더러워지고 구별이 납니다.
연약한 힘이지마는 자기가 성경 말씀을, 이상한 거 말고. 성경 말씀에 보통 자기가 깨달은 거, 깨달은 그것을 행하면 행한 것만치 자기가 “참 예수님의 제자 된다” 말은 자신이 성화된다 말입니다. 깨달은 것만침 행하면 그 사람이 변화가 됩니다. 변화가 되면 변화된 것만치 또 새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자기가 행해서 변화됨으로 진리를 깨달을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진실한 자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자고, 깨달은 것을 행하지는 안하고 자꾸 깨닫기만 더 깨달을라고 하는 그자는 도적입니다, 도적. 그게 절도요 강도입니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는 절도요 강도요”
자기가 깨닫고 행함으로 행한 것만치 자기가 거룩하게 사람이 성화돼서 변화돼서, 변화되고 변화된 것만침 또 새로 더 깨닫게 되고 요렇게 해야만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린 문을 받게 되는 것인데 깨달은 것은 행하지는 안하고 자꾸 알라고만 하는 그런 자들, 신앙을 절대 가지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뭐 신학박사를 백 개를 가졌다, 예를 들어 백 개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렇게 가는 사람은 제대로 탈선되고 말고 나중에 많이 알면 책보따리나 되지 자기 구원에는 하나도 소용없어. 자기 복음으로는 하나도 받지 못합니다.
이래서, 이 문을 닥칠 때에 이 문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사망으로 인도하는 두 문이 있으니까 새로운 시작 새로운 깨달음에, 멸망하는 깨달음, 멸망하는 시작, 멸망하는 행위, 멸망하는 기쁨, 새로운 기쁨은 그게 새 문 열고 들어가서 얻은 건데, 새로운 기쁨, 새로운 기쁨도 새로운 그 기쁨을 가짐으로 멸망하는 그 기쁨도 있고 새로운 기쁨을 가짐으로써 생명을 얻는 그 기쁨도 있는 것입니다.
1.4. 두 문과 두 길의 결과를 알고 예수 믿어라
이러기 때문에 요 아주 중요한 말 여러분들, 문이 있는데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두 문이 있다. 그러면 그 두 문을 지내가면 또 그다음에 또 문이 있습니다. 또 두 문이 있소.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고 두 문이 있는데,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사람들이 그 문을 열었다가 후퇴해 버립니다. 또 그 문은 찾기가 힘이 듭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찾기도 쉽고 문을 열고 들어가고 난 다음에는 재미가 있어서 안 떨어집니다. 알겠습니까?
왜? 이 문을 열면 문 을 열러 들어가는 데 거기도 길이 있습니다. 길로 걸어 가지고 문을 닥친다 그말이오. 또 문을 열고 또 길을 걸어가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그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이 좁고 험해. 이러니까 아예 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찾기도 힘들고 또 찾는 사람이 적어. 왜? 길이 험하니까 그 험한 길을, 좁고 험한 길을 안 갈라 한다 말이오.
좁고 험하다 말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이 아니고,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게 아니고 ‘요라면 요게 틀렸다, 요라면 요게 틀렸다.’ 자꾸 까다롭게 요래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 요렇게, 아무나따나 이런 게 아니라 ‘뭐 주 예수 믿으면 되지’ 하는데, ‘예수 믿으면 되지’ 하는데, ‘그만 예수 믿으면 다 됐다.’ 이라는데, ‘예수 믿는 데도 요렇게 믿는 거는 틀렸다. 요렇게 믿는 거는 옳다.’ 그라면 그게 좀 예수 믿는 게 좁아집니까 넓어집니까?
이랬는데, 예수 믿었는데 ‘그래 믿을 게 없어. 이래 믿어도 되고 저래 믿어도 된다. 뭐 그럴 게 뭐 있나?’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교파를 아직 이거, 여러분들이 교파 시험이 앞으로 많이 옵니다. 교파도 이렇게 믿는 교파도 있고 저렇게 믿는 교파도 있고, 또 교회도 이렇게 믿는 교회도 있고 저렇게 믿는 교회도 있고, 또 목사도 이렇게 인도하는 목사도 있고 저렇게 인도하는 목사도 있다 그말이오.
있는데, 자꾸 좁아지는 거, 좁아지는 것은 뭐이냐 하면 나쁜 것을 자꾸 하나씩 없애고 자꾸 피해서 벗어나는 것이 좁아지는 것이고, 또 자꾸 보다 좋은 거 보다 좋은 거, 보다 옳은 거 보다 옳은 거, 이것이 자꾸 좁아지는 길이요 또 그 길은 험하다 그말이오.
보다 쉬운 것, 보다 수월한 것, 보다 보편적인 것, 보다 자꾸 이라면 자꾸 이래, 자꾸 보다 더 수월하고 보다 좀 쉽게 자꾸 이라면 그리 가면은 어데로 가지요? 예? 그리 가면, 그리 가면은 뭣하고 합작됩니까? 그걸 가리켜서 속화라 이랍니다, 속화. 속화라 말은 세상 풍속과 화합됐다, 속화된다, 이 세상화된다. 이제 그거 세상하고 가깝습니다. 그러면 세상하고 가깝소.
예수를 믿으면서 믿다가 점점 세상으로, 그 사람이 처음에는 예수 믿을라고 시작했다가 세상하고 가까워져서 세상에 빠져 가지고 세상과 꼭 같은 사람 되는 거 있고, 예수 믿어 가지고 차차, 처음에는 세상 사람하고 별로 틀리지 안하더니마는 좀 믿으니까 그 사람이 좀 틀리고 좀 틀리고 좀 틀려서 세상하고 자꾸 틀립니다. 세상하고 자꾸 틀리요. 세상하고 틀리고 하나님의 참교회하고 점점 가까워집니다. 그러면 점점 그리 가까이 나아가면 누구하고 가까워집니까? 하나님하고 가까워집니다. 알겠습니까? 주님하고 가까워집니다. 성경하고 가까워진다 그거요.
이렇게 좁은 길 넓은 길, 좁은 문 넓은 문, 길도 험한 길 아주 넓고 좋은 길 이래 있다 그거요. 이러면 이 문을 찾는 것도 이 좁은 문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을 찾을라 하면 힘이 들어. 이러니까 찾는 사람이 적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문을 찾아가는 것은 길이 넓고 평탄하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아.
또 문을 열면 어찌 됩니까? 문을 좁은 문을 열었습니다. 또 넓은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열고나니까 그다음에 길이 보입니다. 그다음에 또 걸어가야 될 거 아닙니까? 길이 보이는데 좁은 문 열고 척 들어가 보니까 그 안에 있는 길이 넓습니까, 아무나따나 가도 되는 길입니까? 보니까 ‘요래도 안 된다. 요래도 안 된다. 요래야 된다.’ 과거 제가 그 문을 찾기 전보다도 더 까다롭다 말이오. 요래도 안 된다. ‘요래도 안 된다. 요래야 된다.’ 이러니까 그 길이 좁고 험하니까 그만 문 열었다가 탁 닫아 버리고 뒤로 도망을 쳐 버립니다.
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문을 열어 보니까, 이제까지 믿는 것보다도, 이제까지 믿었던 것보다도 더 좋은 길이 있습니다. ‘이래도 되고 이래도 되고’ 이래도 되고 이래도 되고 까다롭지 않다 말이오. 이래도 되고 이래도 되고 하니까, 아무나따나, ‘이래도 되고 아무나따나 믿어도 된다’ 이라니까 자, 그 길은 가기가 쉽소 어렵소?
이라니까 그 길을 만난 사람은 ‘공연히 백 목사한테 배워 가지고 고통을 당하고 다 이랬는데 아, 여기 보니까, 이 한 세계를 바라보고 보니까 여게는 이래 믿어도 되고 이래 믿어도 되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좋은데 거기는 까다롭게 요렇고 조렇고 하니까 에, 안 됐다. 이 길은 참 좋다.’ 문을 열고 난 다음에는 도망을 칩니다. 그리 막 달음박질을 칩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좁은 문 넓은 문, 좁은 길 넓은 길, 생명길 멸망길 요것을 알고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2. 넓은 문은 미신의 길, 고행의 길, 인본의 길, 가감의 길
어제 아침에 몇 가지 가르쳤지요? 몇 가지? 여덟 가지 가르쳤는데 자, 그라면 넓은 문 네 가지인데 넓은 문 네 가지 한번 말해 봐요. 뭐? 처음이 그거라요? 녜, 미신의 길, 또? 고행의 길, 또? 인본의 길, 또? 가감의 길. 요것이 넓은 길입니다. 요거 아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정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것을 뜻을 생각하면 굉장히 넓고 요거 정확합니다.
3. 좁은 문은
3.1. 성경주의
또 그다음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뭐이지? 저 ○ 뭐꼬? 귀에 안 들어와. 여기 잡탱이 종자가 많아. 안될 잡종은 잘 안 들어. 잡종의 귀에는 들리지 안해. 그 종자도 여러 가지가 있어.
이런데, 그래 지금 생명 길은 뭐이요, 첫째? 고거는 성경주의. 뭐 누가 말한다 해도, ‘보자’ `꿈을 꾸었다. 환상을 보았다. 공중에서 소리가 났다. 뭐 이거 천사가 와 가지고 말하더라. 이거는 대학자들이 다 말하더라. 온 교계에 전부가 말하더라.’ 한다고 해도 그 말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요? 성경 어데 있습니까?’ 해 가지고 성경대로가 아니면 온 천하가 다 말해도 부인해 버립니다. 요게 성경주의요. 성경대로만 믿는 거.
3.2. 신본주의
또 그다음에 둘째는 뭐입니까? 하나님주의라 말은 신본주의라 말인데 모든 것을 하나님을 근본으로 해 가지고 한다 그말인데 하나만 예를 들어 말하면 자, 사랑은 하나님만 사랑합니다. 그라면 세상이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합니다. 하나님만 사랑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어짜고? 자녀는 어짜고?’ 하나님만 사랑합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아니' `자녀는 사랑 안 하고?' `그래. 하나님만 사랑해.’ 하나님만 사랑한다는 거. 하나님만 사랑한다는 거.
이라면 남편들은 뿔따구가 날 것이고, 자녀들은 ‘자녀는 사랑 안 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그런 도가 어데 있어?’ 이럴 거라 말이오. 하나님만 사랑해야 네가 살지, 남편 너도 하나님만 사랑하는 아내를 가져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하나님만 사랑하다니? 그러면 하나님을 근본으로 한다 그말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남편을 사랑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편을 사랑합니다. 남편 같으면 사랑할 때도 있고 미워할 때도 있고 또 좀 못마땅하면 그만 이혼할 때도 있고 이렇게 할 수가 있는데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남편을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변치 않으니 하나님 사랑을 제가 변하면 제가 잘못했지.
하나님은 변치 안하기 때문에 변치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분 때문에 사랑하다 보니까, 그분 때문에 사랑하다 보니까 사람 사랑도 뭣도, 자녀 사랑도 위에 사랑도, 원수 사랑도, 원수는 밉지마는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을, 그거 원수를 미워하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보니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라 하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한다 말이오. 하나님 때문에 사랑한다 말이오. 하나님 때문에 인간도 사랑하고 만물도 다 사랑할 수 있어. 이게 하나님주의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주의.
사랑도 그렇고 모든 일도 그래. ‘네가 무슨 일 하노? 돈 때문에?’ `아니. 하나님 때문에 하는 일.’ 그게 신본주의라 말이오. 하나님 때문에 하는 일. 그거는 하나님 때문에 한다면 사는 일도 죽는 일도 하고 품삯이 약해도 하고 비싸도 하고 하나님 때문에 움직이는 거. 요것이 신본주의입니다. 요 신본주의라 말이 요새는 잘 못 들어.
3.3. 정확주의
또 셋째는 뭐입니까? 정확주의. 정확주의 요것을 가리켜서 정확주의나 거룩주의나 진실주의나 같습니다. 이거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게 아니라 이래, ‘이게 정확하다. 정확하다. 요거는 정확하다.’
정확하다고 했는데 그다음에 자기가 정확하다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행동하고 하니까, 정확하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하니까 사람이 어찌 됩니까? 사람이 성화가 됩니다. 알겠습니까? 정확한 대로, 오늘 정확한 요대로 하고 나니까 사람이 성화됐다 말이오. 성화되고 나니까 생각하니까 이제 한 정확이 만점입니까 정확이 또 모자랍니까? 어찌 돼요? 또 모자란다 말이오.
모자라니까, 또 ‘어제 행한 거 요량하면은, 어제 행한 거 나는 정확이 이 이상 없는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까, 생각해 보니까 이거는 이게 정확이 아니고 이보다 더 정확이 있구나. 이보다 더 정확하게, 이리도 저리도 못 하는 더 옳고 바르고 참된 게 있구나.’ 더 정확이 있어서 또 정확대로 합니다.
정확대로 하고 나니까 이제 ‘정확대로 했으니까 됐다’ 이랬는데 또 그뒤에 또 보니까 정확이 새로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왜 어제는 그 정확을 못 봤습니까? 왜 어제는 그 정확을 보지 못했습니까? 왜 못 봤지요? 어제는 왜 그 정확을 보지 못했습니까? 내가 모자라 못 봤다 말이오. 내가 성화가 안 돼 모자라 못 봤어. 사람이 그만치 돼 가지고 보니까 또 정확이 새로 있다 말이오. 이것이 이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더 좋은 거 더 좋은 걸 새로운 좋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고, 더 쉽고 더 평안하고, 더 쉽고 더 평안하고 더 취미 있고 더 인간에게 가까운 것이 그것이 사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 그말이오. 요걸 여러분들이 여덟 가지를 깨달으면 이만해도 신학박사보다, 박사 박박사 뭐, 뭐 올라갑니다. 이거 여덟 가지. 모든 성경, 이것만 해도 그만, 이것만 쭉 바로 나가면 모든 게 다 나가 버려.
3.4. 계속주의
또 그다음에 뭐입니까? 뭐? 녜, 그다음에 넷째로는 계속주의입니다. 어짜든지 한번 이거 옳은 것이면 버리지 말고 뭐 죽음이 와도 계속하고, 가난이 와도 계속하고, 천하가 반대해도 계속하고, 요 옳은 것이면 잡고 놓지 안합니다. 죽어도 놓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병이 들어도 놓지 안하고 어떤 일이 와도, 욥과 같이 병이 들어서 ‘네가 하나님 너 버렸다. 너는 저주받았다.’ 이렇게 뭐라 한다 해도 성경대로의 바로 깨달은 것이면 그건 놓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죽는 그 시간까지 계속하는 것. 요 네 가지가 좁은 문입니다. 또 네 가지가 넓은 문입니다.
4. 성경대로 성령받아서 죽일 것은 죽이고 살릴 것은 살리며 살아가라
이런데, 이제 또 시간 다 됐기 때문에, 자꾸 나와요. 나와서, 오늘 아침에는 보니까 몇 명 안 되는구만. 이러니까 뒈져. 이러니까 뒈져. 이러니까 뭐, 구름타고 오시면 다 벌벌 떨고 다 절단나. 공산주의만 와도 벌벌 떨고 ‘예수 믿는 이놈, 예수 믿으면 죽인다.’ 하면 ‘아이구 예수 안 믿을랍니다.' 다 그따위 될 터이니까 여러분들 금생이야 뭐 짤막한 거 다 살아가는데 내세에 영원 무궁에 가 가지고는 무슨 낯빤대기 가지고 설 것이요? 자기 신앙생활이 다 불타 버리니까 그때 가서 뭐 구원 얻어야 무슨 구원 얻어요? 무슨 구원? 불 가운데서 얻는 구원. 수치스러운 구원.
오늘 아침에는 보니까 아주 얼마 안 나왔어. 한 칠백도 안 되겠어. 한 칠백 될까 그래요. 그러니까 삼백 안 나왔다 그거요. 여기 양성원 학생들이 여기 지금 한 삼십여 명 있어요. 그저 살고 싶은 자는 살고 죽고 싶은 자는 죽고 어짤 수 없는 거라, 그거.
지금도, 산에서 기도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넓은 길 가는 거 있고 좁은 길 가는 것 있습니다. 가서 성경대로의 그거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주관대로, 자기 비위대로, 자기 비위에 맞은 도를 찾습니다, 자기 성질에 맞은 도. 자기 성미에 맞으면 가고 안 맞으면 안 갑니다.
어떤 사람이 지금 성신 받겠다고 성신 받아야 된다 하는데 자꾸, 성신 받는 것은 성경에 말해 놨어. 성경에 성신을 받을라면 이라면 성신 받는다, 성신 받는 것이 사도행전에 보면 다 있습니다. 이리이리 해야 성령 받는 건데 그 법 외에 다른 법으로 성신 받을라 하는 사람은 뭐 받습니까? 마귀 받아. 나중에 가서는 제가 마귀 받아 놓으면은 다른 사람은 미쳤다 하지만 저는 제대로 좋습니다. 알겠습니까?
여기 ○○○씨가 다른 사람은 다 미쳤다 하지마는 저는 제대로 좋소. 그 사람은 뭐하고 있느냐 하면은 ‘백 목사는 재림 예수다’ 하는 걸 자꾸 증거하고 다닙니다, 내가 암만 안 그렇다 해도. 제딴에는 ‘몰라 그렇지, 백 목사 자신도 모른다. 백 목사는 재림할 예수다.’ 이라며 교회마다 돌아다니고 전국에 돌아다니요. 제딴에는, 그게 귀신이 들려 놓으니까 그렇게까지 얼토당토 않는 말도 해. 며칠 전에는 또 자복서를 써내서 ‘내가 그렇게 한 거는 내가 미쳐서 그랬다’ 제 말로 말이요, 편지가 내게 있어요. 미쳐서 그랬다 이랬는데 또 귀신 들어오면 또 달라.
보니까 술이 취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이래 술병 하나 놓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이 죽는가 싶어, 어떤 사람인가 싶어 이래 깨우니까 ○○○씨더래요. 그래 ‘아이구 조사님입니까?’ 하면서 말하는 게 ‘내가 각서 쓴 거 아십니까?’ `나 모른다' 이라니까 내가 그 각서 쓴 거 내가 잘못 썼고, 잘못 써서 그거 내가 지금 후회가 된다고서 보니까 이라더래요. 귀신 들어오면 그래. 귀신이 들어오면, 귀신이 들어오면 다른 사람은 미쳤다 하지만 제딴에는 자꾸 옳고 옳고 옳습니다. 여기 귀신 들기를 원하는 사람 많이 있어, 귀신. 성경대로의 성령의 감화를 받을라고 하지 안하고 다른 거 받을라 하는 거.
성령은 다른 게 아니라.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 신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인데, 요 증거를 자기에게 확실히 믿어지게 하는 것이 성령이요, 또 그대로 소망하게 하는 것이 성령이요, 그대로 행하게 하는 것이 성령이요, 또 점점 하나씩 옳고 바르게 깨닫게 하는 것이 성령이요,
성령은 자기 주관과, 자율과,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 자기의 경험 체험, 자기 취미, 자기 성질, 이것을 죽이는 것이 성령입니까 살리는 게 성령입니까? 죽이는 게 성령이라. 이런데 그걸 자꾸 살려 제 취미대로 자기 기분대로 이래 예수 믿는 걸, 자꾸 돌아다니니까 그 사람을 가리켜서 뭐 찾는 사람이라고 내가 말했지요? 호기심, 호기심.
자기 속에 이상하고 기이한 것을 자꾸 찾아나가는 게 그게 호기심입니다. 호기심에서 이 모든 미신과 모든 철학들이 나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만 다 냅두고 성경대로가 아니면, 성경대로 아니면, 그러니까 성신 받는 것은, 성령 받을라면 성경에 기록한 그대로 받아야 되지 산에 간다고 받는 것도 아니고 밥 굶는다고 받는 거 아니라. 성경대로 그 방법이라야 성령 받지 다른 방법으로써는 성령 받는 일이 없다 요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고, 구역장들, 여게 뭐 냉장고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사람, 뭐 또 죽었다가 뭐 사흘 만에 살아나와 가지고 나왔다 하면서 이런 말 저런 말, 그걸 누가 봤소? 또 죽었다 살아나왔다 하면, 자, 삼년 있다가, 삼 년 있으니까 다 해골 됐을 거 아니요? 소골 됐을 건데 삼 년 있다가 무덤에서 떡 벌어져 가지고 살아나와 가지고 그 사람이 말하면 그 말을 들을 겁니까 안 들을 겁니까? 그 말을 들을랍니까 안 들을랍니까? 그 말을 들을 사람들 손 들어 봐. 무덤 가운데 삼 년 이래 썩어서 삼 년 있다가 그 사람이 무덤이 떡 갈라져 가지고 나와서 이래 말하면 들을랍니까 안 들을랍니까? 그거 들어야 됩니까 안 들어야 됩니까? 뭐, 순거짓말쟁이들 모양으로. 들을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안 들을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이런데, 그거는 냅두고 사흘 동안 죽었다가 깼다고 해 가지고 그 사람이 오만 쓸데 없는 소리 하는데 막 그걸 그 사람 말하는 걸 녹음을 해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이거 들어 보라고 이래 가지고 저 양성원에도 들고 왔더래, 이거 양성원에 이거 들어 보라고. 이래 가지고 어떤 사람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왔다 해 가지고 이라니까 그거 지금 그 사람 말한 걸 들어 보라고.
그러면 그 사람 말한 거 뭐이든지 듣는데 고게 귀신이 들어 가지고 그래 하기 때문에 성경에 비슷한 거, 성경대로 비슷한 거 말하고 그총 중에 틀린 거 하나나 둘이나 딱 넣어 가지고 하나 둘 틀린 거 그것만 잡으면 그 사람을 얼마든지 끌고 나갈 수가 있다 그거요.
여러분들이 이렇기 때문에 이 사지 속에, 우는 사자와 같이 마귀가 우리를 삼킬라고 하는 이 속에 들어 있는데 이걸 모르고 어리석게, 성경을 이게, 성경이 잣대고, 성경이 길이고, 성경이 빛인데 성경을 떠나서 제 생각대로 뭘 찾아가겠다고 그런 망령을 부리고 있소?
그거 가지고 있는 사람 여기 손 들어봐요. 그거 저 녹음 지금 복사해 가지고 그 테이프 가지고 있는 사람 이 시간 손 들어 봐요. 하나님 앞에 들어 봐! 왜 안 들어 안 들기를?  ○○○씨 없어? 들어 봐. 없어?  ○○○? 집에 없어, 그 테이프가? 어쨌어? 그 테이프 어쨌어? 본래 없어?
나는 저분을 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어머니가 저게 무슨 기도원이라? 무슨 기도원이지? 할렐루야 기도원. 할렐루야 기도원에 가 가지고 어쩌든지, 저 ○○○집사가 그래, 저 선생이. 그라라 하니까 ‘아닙니다’ 거게는 속에 있는 죄인가 뭐 병인가 그걸 손가락으로 요래 가지고 요래 ‘후벼낸다’ 확 후벼내면 쪽 빠져 나온다고. 빼닫이 빼여 나오듯이.
그래 보니까 ○○조사님은 달라. ○○조사님은 거기 가도 물이 들지 안했어. 그거 다 부인하고 이랬는데, ○○선생은 그거 아주 뭐 믿어. 뭐 믿어 가지고 내가 말하니까 뭐 항거를 해, 그렇지 않다고. 믿어. 이러니까 여자들 신앙이,
그러기에 자, 그게 그런 거짓말, 그거 뭐이라 하더라, 그 사람이? 그 원장이 뭐라 하더라? 뭐 고무 다리 해 가지고 뭐라 하는데 그 사람 설교 내가 들었어. 들었는데 그는 다 넓은 길이야. 거게는 그래 가 가지고는 아직 참 길을 찾아갈라 하면 멀었어.
이래 가지고 유혹을 받아서, 여기 또 여기는 안 드는데 이 안 들면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어, 지금? 또 진해서 와 가지고 ○○○권사님 구역에서 그걸 녹음해 가지고 와 가지고 이걸 뭐 복사를 해 가지고 아마 복사했을 거라. 여기 복사실에 복사해 줬나, 더러? 어? 몇 개 해 줬어? 해 준 사람 손 들어 봐. 편집실에 그거 복사해 준 사람들 손 들어 보라고. 해 가는 거 누가 해 주는데? 해 준 사람이 있겠지? 그 복사 담당자 여기 새벽기도 안 나왔나?  ○○○? 새벽기도 안 나왔나?  ○○○? 이거 아마 이게 죽으니까 지금 그게, 그거 벌써 뒈졌어. 벌써 그거 보니까 벌써 죽었다 말이오. 벌써 물들어 가지고 힘 다 잊어버렸어. 그 벌써 죽었다 말이오. ○○○ 여기 새벽기도 안 나왔나, ○○○? 봐, 이거 죽었어. 들으면 죽습니다. 대번에 들어가면 그만 신앙으로 죽자껏 이래 나가는 걸 그만 착 꺾어져 버리면 다시 일어나지 못해요. 알겠소?
구역장들 자기 구역에 그거 있는 거 조사해 가지고 다 거둬요. 다 거둬 가지고,  행정실 이쪽에 여반에 거기 있는 ○선생한테 다 갖다 놔요. 그래 가지고 누가 누가 가져온 거, 그거 여러분들 뭐 이미 가지고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거 몰라 놓으니까, 몰라 놓으니까 마귀에게 홀켜간 것이니까 이제 그걸 내놓아서 마귀에게서 다 해방당하고 다시 살라 그말이오. 그거 이미 한 게 수치가 아니라 앞으로 안 내놓고 하는 그게 더 수치라. 우리 교회 계속적으로 하고 있는 게 있어, 지금. 그래 가지고 들은 사람은 다 벌써 죽은 사람이 수십 명이라. 들은 사람이 이 신앙 ‘아이구 그렇게 뭐 까다롭게 예수 믿을 게 뭐 있느냐? 쉽게 예수 믿지.’ 이래 가지고 벌써 속화돼 가지고 벌써 죽은 사람이 수십 명이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러분들이 시험에 들지 안하도록 자꾸 기도해야 되지 여게서 예수 믿는 것은 차차 좁은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거면 다가 아니라 아직도 좁은 길 갈라면 멀었어. 언제까지 가? 생명과 소유와 몸을 다 바쳐 가지고 간다고 다 되는 거 아니야. 바쳐 가지고 아직까지 남아, 갈 길이. 죽는 날까지 가야 돼요. 그게 뭐이냐? 하늘나라의 구원에 영광의 차이 있는 거라.
2015년 5월 1일, 04, A, Bwyoon,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