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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목사님 설교집

보기를 원하나이다

윤봉원 2014.03.23 09:51 조회 수 : 562

87-02-18 수밤막 10:46-52날자: 1987년 2월 18일 수밤

제목:  보기를 원하나이다

본문: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1. 공과

제 2 공과.

본문, 마가복음 10장 46로 52절.

제목, ‘보기를 원하나이다’

요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장 7절.

서론.‘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는 온 지방이 아는 유명한 사람이다. 행복돼서가 아니고 불쌍하고 가련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거지요 길가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받고 항상 남의 누나 끼치고 구걸 신세나 져야 하는 가난하고 천한 거지였다.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큰 소리로 불렀다.’

본론.

첫째,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억눌렀다. 바디매오에게는 금생과 내세 영과 육의 비참과 가련의 신세를 완전히 벗고 영원한 행복과 해결을 주실 주님을 만났으니 죽자고 놓지 않고 호소한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나 이 비밀의 사실을 모르고 야단만 치고 눌러 꺾기만 하였다. 그러나 영원한 생사화복이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는 바디매오는 잠잠하라 할수록 사생결단으로 더욱 심히 소리질러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였다.’

둘째, ‘예수님이 머물러 서셔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온 사람들의 인심도 변하고 대우도 변하였다.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예수님께 달려왔다. 예수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소원을 알렸다. 그는 참으로 저희 모든 불행, 비참, 가련의 원인이 보지 못함인 것을 바로 찾아 알았다. 참 존비귀천, 생사화복, 흥망성쇠의 자기 길, 자기 업, 자기 배움, 자기 출세, 자기 영광, 자기 취미, 자기 공명과 사람, 물질, 사건들을 바로 보지 못함을 탄식하고 보기를 원한 바디매오는 참 부럽다.’

셋째,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곧 보게 되어 길가에서 예수님을 좇았다.’

‘자기를 구원한 소경의 믿음.’

첫째, ‘자기의 비참, 가난, 천대의 전부를 보지 못하는 까닭임을 그는 믿었다.’

둘째, ‘바로 보는 자 되게 하실 이는 예수님뿐임을 믿는 믿음을 가졌다.’

셋째, ‘현실 수많은 사람들의 방해에 눌리지 않고 더욱 심히 호소한 믿음.’

넷째, ‘부르시는 주님 음성 듣고 모든 것 다 버리고 주님께 달려간 믿음.’

다섯째, ‘예수님께 보기만을 소원한 믿음이었다.’

문답에,

‘바디매오는 자기의 전 불행의 원인이 무엇임을 알았느뇨?’ 답에, ‘보지 못함임을 알았습니다.’

둘째, ‘보지 못하는 병을 예수님께 고침 받으려 할 때에 어떤 애로가 있었느뇨?’ ‘많은 사람들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셋째, ‘바디매오는 어떻게 되었느뇨?’ ‘더욱 심히 힘써 예수님께 달라붙었습니다.'

넷째, ‘예수님이 소경을 불쌍히 여기실 때 모든 환경은 어떠하였느뇨?’ `모든 사람의 마음도 대우도 다 변하여졌습니다.’ 다섯째, ‘믿음의 결과는 어찌 되었느뇨?’ `완전히 나아 주님을 따랐습니다.’ 요것이 공과입니다.

2. 기도, 새벽기도, 찬송가 출판, 전도지에 대한 광고.

기도록에 등록하고 매일 자타의 미래를 위해서 삼십 분씩 기도하기로 했는데 이 기도를 잃지 말고 계속합시다. 앞으로 큰 어려움 올 때에 이 기도로 다 승리하고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새로 등록하실 분은 일층 입구에 가면 등록할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말고 계속해 나오도록 합시다. 내가 저 어느 하루 새벽, 그날 너무 피곤해서 안 나왔더니 그만 교인들은 그 하루 아침 보고 난 다음에 얼마나 많이 줄고 안 나왔는지, 좋은 거는 본 안 뜨고 그런 거는 어떻게 잘 본을 뜨는지. 그날 아침에 제가 저 교환실에서 깨워서 전화를 들었습니다. 들었으나 듣고는 그만 그대로 놓고 일어나지를 못했었습니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말고 다 나오도록 그렇게 합시다.

이제 찬송가가 거의 출판만 하도록 거의 돼 가는데 오늘도 그 일 좀 했는데 또 나중에 조금 모여서 해야 될 거 같습니다.

전도지 연보를 하실 분은 연보 봉투에 특별 연보란에다가 ‘전도지 연보’ 하고 거기 같이 넣으면 됩니다. 이제 이번에 전도지를 많이 박아서 그라고 나서 지금 아직까지 전도지 대금을 다 못 치르고 아마 한 몇만 원 있는가, 몇만 원 있지? 삼십만 원 남아 있어? 아직까지 지불 못 한 것이 삼십만 원 남아 있답니다. 주일학교 광고입니다. 요번 졸업하는 날 참석한 졸업생들을 구역장님들과 반사 선생님들은 잘 챙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졸업생들이 좀 의외에도 많이 참석을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역장님들과 반사 선생님들이 잘 챙겨서 힘을 쓰시면 아마 그전보다 이번에는 달리 더 학생들이 많이 힘을 얻어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 제가 설교했는데 하나님이 말씀도 주셔서 그날 모든 학생들이 다 은혜를 받는 것을 봤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면으로 함께 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기회를 놓지 말고 우리도 함께 하나님이 일하실 때에 우리도 함께 일하면 좋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3. 바디매오는?

3.1. 불쌍하고 가련한 것으로 유명했다

성경에 기록된 이적 이런 것은 어떤 그 역사에 한번 있었던 그 사실을, 역사의 사실인 그것을 우리에게 역사 소개를 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은 다 우리에게 생명 구원 도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온 세상에도 다 기록해서 둘라고 하면 세상에도 다 둘 수 없는 그만큼 많은 양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간추려서 이 육십육 권에 기록해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밤에 봉독한 이 소경 눈뜬 이 사실도 온 세상에 둘 만한 그런 필요 있는 모든 기록을 다 제하고 그것보다 나아서 우리에게 필요해서 기록해 주신 이 구원 도리의 말씀인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여게서 뭐 소경이 눈 떴다, 예수교는 소경이 눈뜨는 예수교라 하는 그런 것 아닙니다. 이거는 우리의 구원 도리를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에 여게서 우리 구원 도리를 어떻게 가르치고 계시는가 하는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성경 보는 것이 다 자기에게는 복음이 되지를 못합니다. 공과를 많이 읽어 보면 그만 거기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디매오라는 이 소경은 그 지방에서 불쌍하고 가련한 자로 유명하다’ 하는 것을 공과에 기록했습니다. 성경 해석은 아무나따나 붙이면 되고 이상하게만 꾸며대면 되는 게 아닙니다. 한 마디를 잘못하면 심판 받습니다. 없는 걸 있다 하면은 하나님의 성경에 기록한 그 벌을 더 받습니다. 있는 걸 없다 하면은 구원에서 제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나따나 성경은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쌍하기로 유명하다는 것은 그 사람은 디매오의 아들 거지 바디매오라 이렇게 그 부모의 이름까지 다 여게 기록한 것은 그것은 그 지방에서 그렇게 가련하게 돼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저거 아버지도 알게 되고 그 아들도 알게 되고 그렇게 유명한 것은 그 당시에 그는 비참한 가련한 자로 유명해 있었습니다.

이런 도시에서는, 도시에서도 유명하게 비참하고 가련하면 그 사람은 소문이 많이 나고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이 소경은 아주 불쌍하고 가련한 것으로써 유명한 그런 참 가장 천한 사람입니다.

3.2. 자신의 불행의 문제를 해결 해 줄 예수로 확실히 믿었다.

그랬는데 그가 길가에 있을 때에 나사렛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그 말을 듣고 그가 고함을 질러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럴 때에 거기 따라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소경을 아주 꾸짖고, 잠잠하라고 꾸짖었다 이랬습니다. 아마 별별 뭐 책망을 하고 야단을 쳤을 것입니다. 이놈 고약한 놈 선생님이 지나가시는데 그란다고 뭐 별별 꾸짖었다고 하고 또 잠잠하라 했다고 보면은 그런 그 분위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소경은 그럴수록 그는 심히 부르짖고 더 크게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예수님에게 불쌍히 여겨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라니까 옆의 사람들은 또 더 잠잠하라는 소리도 아마 많이 떠들었을 것입니다. 이놈 잠잠하라 하고서 뭐 꾸짖고 야단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바디매오는 환경에서 그렇게 야단치는 데에 눌려지지 안하고 꺾어지지 안하고 그는 더욱 큰 소리와 심히 부르짖었습니다.

왜 그랬는가, 그거는? 자기가 예수님 만나서 예수님이 자기에게 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 주시면 자기 문제는 그만 다 해결이 되고 금생도 해결이요, 내세도 해결이요, 모든 것이 다 불행이 다 해결되고 예수님 만나면 다 되는데 거게 지금 생사화복이 지금, 죽고 사는 것이 모든 화복이 거게 달렸는데 거게 달려 있는 걸, 예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데 옆의 사람들이 자꾸 방해를 하고 고함을 지르니까, 어실므실하게 알면 옆에 말하면 ‘이 말 안 해야 되는가보다’ 그만 중단했을 건데 확실히 자기에게는 이분 만난 이게 아니면 지금 자기는 영원히 참 가련한 신세가 되는데 옆에 사람들은 방해하지마는 만나서 주님에게 해결 못 받으면 죽고 뭐 받으면 살고 하니까 생명을 내놓고 결사적으로 부르짖었던 그것을 여게서 볼 수 있습니다.

3.3. 예수님이 그를 불쌍히 여겨 돌아볼 때 주변 환경은 180도 바뀌었다.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말했어. 이러니까 모든 사람들은 방해하고 잠잠하라고 말하고 그는 고함지르고 한참 이렇게 좀 떠들어졌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께서 착 머물러 서셔 가지고 머물러 서셔서 그를 부르라 말씀했습니다. 부르짖는 소경을 이리 오라고 부르라 말씀했습니다. 이라니까 예수님이 그 소경을 불쌍히 여겨서 돌보시니까, 부르라 하시니까 벌써 그 한마디에서 거게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다 변해졌을 것입니다. 좀 전에는 천대 멸시 이렇게 하고서 마구잡이로 억누르고 이렇게 했지마는 예수님이 ‘그를 불러 오라’ 하시니까 그만 그때에 모든 사람들의 인심이 변해졌습니다. 그만 천하게 봤던 사람이 ‘야, 주님이 부르신다.’ 이라면서 모두 그 소경에게 말하기를 ‘안심하라 안심하라 너 부른다 부른다’ 이라면서 모두 다 그만 아주 소경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좀 깊이 느껴야 됩니다. 공과를 자꾸 읽으면 느껴질 것이오.

우리가 주님이 참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자기의 어떤 문제든지 그 비참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자기의 어떤 비참이라든지 예수님이 해결해 주시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예수님께 부르짖는 소리를 옆에 사람들이 방해한다고 때린다고 뭐 끌어낸다고 발길로 찬다고 상관이 없습니다.

그 해결 못 받으면 저는 일생 참 멸망이고 그 해결 받으면 지금 주님에게 눈 띄워 주심을 받으면 자기도 온전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지금 생사화복이 거기 매달린 그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이 소경이 옆에서 고함질러도 거기 제재 받지 안하고 그럴수록 ‘요 기회만 놓치면 나는 절단난다’ 그 자꾸 방해를 할수록이 ‘이 기회 놓쳐진다’ 하니까 더 부르짖고 고함을 질렀던 것입니다. 요게 신앙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진다고 해도 그 소망가진 것이 자기에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안하면 자기는 비참해지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면 자기는 만사 해결이 되는 요 사실을 믿는 믿음만치, 믿는 믿음이 있는 것만치 방해에 방해받지 안하고 방해할수록 더 부르짖게 됩니다. 왜? 방해하니까 그만, 방해하니 못 받게 하니까 못 받으면 절단 나니까 못 받게 되니 사생결단으로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핍박받는 것이 그 핍박을 당할 때에 그가 속에 참 믿나 안 믿나, 예수님으로만 해결 된다 안 된다 하는 것을 그가 믿나 안 믿나, 또 해결, 예수님의 긍휼이 안 오면 어찌 되며 긍휼이 자기에게 오면 어찌 된다는 거게 대해서 생사화복이 거게 달렸다는 것을 믿는 것만치 그는 방해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우기 그는 열심히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이랬는데, 모두 야단을 치고, 그때 뭐 그랬을 것입니다. 이놈 못된 놈 잠잠해, 이 거지 이 천한 거지 이놈이 뭐 지금 야단지기느냐고 야단을 쳤을 것입니다.

이랬지마는 그가 호소할 때에 예수님이 서셔서 ‘그를 내게로 오라 하라’ 하는 예수님의 긍휼의 말이 한 마디 딱 떨어지니까 아마 그때부터는 그 소경에 대해서 ‘이놈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이 거지야 잠잠하라” 소리 하는 사람도 없고 막 우대입니다, 그만 그때부터. ‘안심하라. 지금 주님이 너를 부르신다.’ 요것이 예수 믿는 재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대가, 나라가, 사회가, 가정이, 어떤 그 큰 환난의 박해가 와도 주님이 딱 우리를 한번 권고하시면, 권고하시면 환경은 백팔십도로 그만 확 변해지고 바꿔지는 것입니다. 그런 걸 여러분들이 체험했습니까? 확 바꿔집니다. 그런 걸 잠깐 좀 썼습니다.

3.4.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로 감

‘안심하라, 너를 부르신다.’ 이라니까 소경이 주님이 부르신다는 그 말을 듣고는 거게 나타내기를 겉옷을 버려두고, “겉옷을 내어버리고”(막 10:50) 버려 두고가 아니고.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주님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면 소경의 겉옷을, 이것이 우리의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거라 그말이오.

소경으로 말하면 오랫동안 거지로서 길가에 자고 이렇게 하니까 겉옷이라면 자기 이불도 되고 침구도 되고 자기 집도 되고 그만 그 하나면 다입니다, 그만. 그거 하나뿐이오. 문둥이를 이래 문둥이들 보면 지금은 뭐 그렇지마는 겉옷이요 이불이요 그 하나 더울 때는 말아 짊어지고 암만 오뉴월이라도 말아 짊어지고 돌아다니고 하는 그것은 제 재산 다라.

그런데, “겉옷을 버리고” 주님이 부르신다 하니까 주님이 오라 하시니 그뭐 병 나으면 다 해결될 터인데 그까짓 거 뭐 병 낫는 그것이 자기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겉옷, 겉옷이 자기 모든 재산이지마는 그보다 더 크기 때문에 그걸 버려두고 주님에게 갔습니다.

옆의 사람들이 말했을 것이오. ‘네가 오늘 저녁이라도 이거 버리고 가면 지금 네가 어떻게 할려고 이걸 버리고 가느냐? 이거 가지고 가지.’ 뭐 옆의 사람이 그랬을 거라. ‘네 신세가 지금 이거, 그러면 오늘 저녁이라도 그만,’ 겨울이면 얼어서 절단날 것이고 이러니까 가지고 가야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마는 그는 그만 버려 버리고 그만 달아났습니다. 고거 주님이 보시고.

“버리고”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래 물으니까 이제까지 뭐 거지로 지냈으니까 재산도 필요할 것이고, 의복도 필요할 것이고, 또 오만 거 말이요, 거지면 다 거지는 없는 줄 압니까? 거지도 장가도 가고 싶을 것이고 뭐 오만 거 다 소원 많을 겁니다. 소원 많애. 그 거지도 사람인데 더군다나 더 부자도 소원이 많은데 거지는 소원이 더 많을 것 아닙니까? 뭐 모든 것 하나도 가져보지 못했으니 소원이 많을 거라 말이오.

4. 바디매오의 믿음

4.1. 자신의 불행의 원인이 보지 못함임을 믿었다.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아무것도 내가 없고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들이 가서 깊이 새기고 해서 여게서 참 영감, 성신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믿음 다섯 가지를 여게 말했는데, 첫째는 자기의 비참의 그 모든 원인이 보지 못하는 까닭이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님이 그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 행복이 어데 있으며 자기 불행이 어데 있는지, 자기 망칠 것이 어데 있는지, 사람도 ‘이 사람은 나를 망칠 사람이다, 이 사람은 나를 복되게 할 사람이다, 이 돈 뭉텅이는 나를 망칠 것이다, 이 돈 뭉텅이는 나를 복되게 할 것이다, 이 돈 뭉텅이보다 이 가난이 나를 행복되게 할 것이다, 이 배움은 나를 망칠 것이다, 나만 망칠 게 아니라 가족들 다 망칠 것이다, 이웃도 망칠 것이다, 이 배움은 행복될 것이다, 이 사업은 나를 망칠 사업이다, 이 사업은 나를 복되게 할 사업이다.’

내가 지금 소원이 있는데 이 소원을 보는 눈이 없어. 제가 가진 이 소원, 내가 가진 이 소원은 나를 망칠 소원인지, 자기를 복되게 할 소원인지, 소경이라 이걸 보지 못해. 자식을 공부를 시키니까 이 공부 시키면 자식 망치고 나 망치고 가족 다 망칠 그 공부인지, 그런 공부가 얼마나 많은지! 열에 아홉은 그 공부요. 십분지 구는 그 공부라. 공부해 가지고 자기 자타에게 유익된 공부는 십분의 일이 될까 말까 해.

그런데 사람들이 공부면 다 좋은 줄 알지 자기 망칠 공부인 걸 몰라. 또 자기 유익되게 할 공부를 몰라. 못 봐. 돈도 자기 망칠 돈도 있고 자기 복되게 할 돈도 있고, 사업도 자기를 망칠 사업도 있고 복되게 할 사업도 있고, 사람도 사귀면 나를 망칠 사람도 있고 사귀어서 유익될 사람도 있고, 아무리 웃고 좋은 게 좋지마는 그 웃음이 자기 망칠 웃음도 있고 자기를 복되게 할 웃음도 있어.

자기가 무슨 이런 사업 저런 사업 하면 그 사업도 자기를 망칠 사업인지 자기를 복되게 할 사업인지, 자기 명예라면 다 좋아하지마는 그 명예가 자기 망칠 명예인지 그 명예가 자기를 행복되게 할 명예인지,

이 모든 일생동안 살아나가는 가운데에 사람이나 물건이나 사건이나 명예나 지위나 행복이나 성공이나 실패나 모든 지식이나 자기에게 있는 건강이나, 내게는 건강 요놈이 나를 망친다는 그걸 못 본다 그말이오. 건강 그놈이 들어서 망쳐! 그 사람은 건강 그게 들어 자기 가족을 다 망쳐.

이것을 바디매오는 자기의 모든 불행이 바로 보지 못하는, 보지 못하는 이것 때문에 불행했다는 그 원인을 찾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주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했습니다.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 많지마는 ‘어쩌든지 명예는 가져야 된다, 지위는 가져야 된다, 돈은 가져야 된다, 사업은 해야 된다, 성공은 해야 된다, 남에게 유명은 해야 된다, 형통은 돼야 된다.’ 형통이 돼 망칠 형통도 있고 불통이 자기를 행복되게 할 불통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나 물건이나 사건이나 어떤 친구나 종교나 지식이나 뭐이든지 이것이 자기를 망칠 것인지 복되게 할 것인지 이것을 보지 못하는 여기에서 인생은 멸망받는다, 바로 보지 못하는 데서 멸망받는다 요것을 아는 요 사람을 주님이 칭찬했습니다. 요걸 가르칩니다.

어쨌든지 인생은 어리석어서 마귀에게 눈이 감기워져서 일방적(一方的) 지식만 가지고 있습니다, 일방적 지식만. 이 세상만 보고 영원 장래도 못 봅니다. 저만 보고 하나님도 못 봅니다. 있으면 좋은 줄만 알았지 있는 것이 자기를 망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래서, ‘아, 나는 벌써 나이가 몇 살인데’ 이제까지의 자기의 미래가 현재되고 현재가 과거 되니까 ‘내가 미래로 있을 때는 어떻게 견해했으며 그게 현재로 닥치니까 어떤 견해가 되던가? 지내 놓고 보니까 그것이 어찌 됐는가?’ 요것을 자기 일생을 연구해 가지고 자기가 참으로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는 여게 대해서 탄식을 하고 고민하는 요 사람이 돼야 될 터인데 그걸 모른다 그거요.

전부 망치는 것은 제가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사리 판단의 눈이 어두워서, 가치 평가의 눈이 어두워서, 복과 화를 보는 눈이 어두워서, 돈을 보는 눈이 어두워서, 사업을 보는 눈이 어두워서, 사람을 보는 눈이 어두워서,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 9:40-41)



바로만 보고 자기에게 해할 거 봐서 피하고 자기에게 유익될 거 가까이 잡고 이라면 전체는 행복뿐인데 이걸 몰라서, 이런 걸 사람들은 몰라서 멸망을 받는 것인데 이 바디매오가 자기의 비참하고 가련한 것이 보지 못한 이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자기가 알고 주님 앞에 나아왔기 때문에 주님이 칭찬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하는 것은 자기의 비참, 가난, 천대 전부를 보지 못하는 까닭임을 그는 믿었습니다, 보지 못하는 까닭임을.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소경이가?’ ‘네가 본다 하는고로 죄가 그저 있다.’(요 9:40-41) 했어, 본다 하는고로. 예수님의 영감으로 봐야 되지 영감 아닌 자기를 죽일 악령 악성 악습으로서 보니까 전부는 죽는 것은 사는 것으로 사는 것은 죽는 거로 정꺼꾸로 보는 게 인생 아닙니까? “본다 함으로 네가 죄가 그저 있고 본다 함으로 네가 망할 자다, 본다 함으로 너는 망한다.” 말씀했습니다.

4.2. 자신을 바로 보게 할 자는 예수님뿐임을 믿었다.

둘째로는 바로 보는 자 되게 하실 이는 예수님뿐임을 믿는 그 믿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 외에  우리에게 바로 보는 이 심령의 지혜를 줄 이는 예수님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세계에 있는 학문을 다 통달해도 그것은 자기의 행불행 생사화복을 보는 눈이 하나도 없습니다. 깜배기입니다. 소경이오. 소경이면 좋지마는 꺼꾸로 봐. 망할 것은 흥한다, 죽는 것은 산다, 사는 것은 죽는다 해 가지고 인생이 전멸되는 것이 인생 아닙니까?

‘내가 보지 못함으로 모든 불행이 내게 와 가지고 영원히 비참하게 되는데 이  비참의 원인되는 이 못 보는 것은 예수님 한 분만이 보게 해 주실 수 있다’ 하는 요 믿음을 가진 거 주님이 칭찬합니다. 요 믿음 가르칠라고 이거 이 바디매오를 여기 기록한 것이요, 뭐. 바디매오 소경 눈뜬 걸 가르친 게 아닙니다. 요게서 우리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라.

금생과 내세 영과 육 전부 멸망하는 것은 보지 못하는 그것이 원인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치료해 주실 이는, 바로 치료해 주실 이는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천상 천하에 아무도 없습니다. 요거 믿습니까?

4.3. 현실의 방해에 눌리지 않고 더욱 심히 호소한 믿음

셋째는 ‘현실 수많은 사람들의 방해에 눌리지 않고 더욱 심히 호소한 믿음’ 자기는 확실히 믿기 때문에, 이 예수님만 잡고 지금 예수님이면 자기 전체는 해결이 되는데, 해결과 행복이 되는데 옆에 방해하니까, 해결 되나 안 되나 해야 방해를 받지, 자기는 그 방해받는 것이 생명 뺏기는 것보다 더하기 때문에 마구 결사적으로 달라 듭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모든 걸 영원히 해결해 주실 이 구주가 되는 것을 믿는 것만치 부르짖기를 심히 부르짖고 방해를 할수록이 방해에 받치지 안하고 방해할수록이 이거 떨구면 안 된다 하고서 더 부르짖는 것이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을 가르칩니다. 기독교는 핍박이 있으면 수그러드는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더 복음은 확대되어 갔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순교하기까지 믿음을 놓지 않는 것이다.



네가 세상에 이런 거 저런 거 신앙에 방해되는 그 모든 방해에 방해를 받는 것은 네가 예수님께 대해서 하는 소망이 빈약하기 때문에 방해 받는 것이지 예수님으로서만 자기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이 사실을 믿는 것만치 그것이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을 믿는 자는 죽인다 해도 죽어도 그거 놓지 않습니다. 그 소망 놓지 않소. 순교자들이 다 어데 순교합니까? 순교자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 구원 이룰 이 사실이 생명보다 귀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죽이면 죽었지 그거 놓지 않습니다. 이 믿음이 있습니까! 이 믿음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4.4. 주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 던져 버리고 따랐다. 진주와 보화를 사기 위해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파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시켜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해야 정상이다. 교사도, 새벽기도도, 금요기도도, 성경 묵상도.



넷째로, 부르시는 주님 음성 듣고 모든 것 다 버리고 주님께 달려갔습니다. 자기로서는 재산으로는 제일 겉옷이 제일 귀한 것인데, 주님의 뜻인 것을, 주님의 뜻이 주님의 부르시는 것인데, 주님의 뜻이 바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인데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주님의 뜻을 깨닫고 나서는 그 뜻을 행하는 데에는 소유도 몸도 생명도 관계없어. 그런 것 다 돌보지 안해. 그거 다 집어 던지고 주님의 뜻, 내게 명령한 주님의 뜻 하나 복종하기를 이루기를 위해서 다 기울입니다. 이거 기울이는 사람 적지 안해. 적지 않소. 많습니다. 예수 바로 믿는 사람 다 이래 믿소.

주님의 뜻인 것을 찾고 바고 찾고 난 다음에는 뭐 생명이 걸린다고 지체합니까? 재산이 걸린다고? 그까짓 거 다, 그까짓 돌보지 안해요. 죽는다 해도 주님의 뜻이라면 단행합니다.

사람이 가다가 실수해 가지고 가끔 삐뚤어짐이 있지마는 자기의 전체 생활로서는 주님의 뜻이라면 생명 바쳐서 단행 안 하는 사람 없습니다. 이게 다 신앙입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

4.5. 다른 것 구하지 않고 보기를 원한 믿음

다섯째로, 예수님께서 ‘네 소원이 뭐이냐? 내가 네 소원이 뭐이든지 다 이루어 줄 터이니 네 소원이 뭐이냐?’ 이럴 때에 그는 뭐 이것 저것 말하지 안하고 ‘선생님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망하고 흥할 것을 바로 보기를 원하나이다. 나 망칠 거 나를 구원할 거 내게 해로울 거 유익될 거 이거 보는 것을 내가 원하나이다.’ 요것만을 주님 앞에서 소원하는 자가 주님이 그에게 보는 은혜를 주십니다. 양심의 화인 맞으면 옳고 그름, 흥하고 망하는 것, 부끄러움과 영광을 보지 못한다.



보면 다지, 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고 알고, 내가 오늘도 산에서 어떤 청년 만나 가지고 ‘네가 자꾸 이렇게 뭐 벌로 힘쓰면 안 되니까 성경을 열심히 봐라. 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것을 네가 성경에서 봐서 네가 깨달아라. 하나님이 뭘 제일 원하시며 제일 미워하시는가 그걸 찾아라. 그라고 난 다음에는 사람은 무엇이며 너는 뭐 어떤 건가 너를 찾아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노하실까 그것 찾고 사물에 대해서도 그것 찾고 그라면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라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는 말을 했습니다.

5. 인간의 흥망성쇠, 행복과 불행은 보느냐 못 보느냐에 달렸다.

이러니까, 요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서 이 소경된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소경된 것을. 사람들은 다 보고 제 지혜의 눈으로, 제 마음으로, 제 생각으로 보고, 제 마음으로 보고, 제 지식으로 보고, 이성 판단으로 보고, 자기 견해로 보고, 봐서 자기 딴에는 제일 좋은 대로 택해서 갔다는 것이 다 멸망 받고 말았어.

인간이 자기 좋은 대로 안 해서 멸망 받은 자 있습니까? 제일 자기 좋은 것 택했지. 하고 싶은 거 택하고 제일 그게 좋다 싶은 거 택했지. 그 길에서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배우면 다 좋은 줄 알지마는, 배우면 다 좋은 줄 알지마는 공부하는 것이 망하는 것도 있고 사는 것도 있으니까 그걸 알아야지. 학교 가서 공부를 해도 망할 공부 있고 살 공부 있어. 어떤 자는 망할 것만 해. 망할 것만 해. 제딴에는 지혜 있게 하지만 망할 것만 해. 가 봐, 안 망하는가! 뒤에 돌이키면 안 망해도 그동안에는 손해 다 봤지, 뭐. 별수 없어.

이래서, 사람들이 모든 것을 사람이나 물건이나 일이나 사건이나 지식이나 사업이나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행락이나 쾌락이나 행복이나 모든 것 다 그것을 바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망합니다.

사람들이 왜 망해? 일방적 지식뿐이오. 한쪽뿐이라. 돈은 많으면 좋은 줄만 알지 돈이 적어야 좋은 줄 몰라. 건강은 얼마든지 있으면 좋은 줄 알지 건강보다 그 몸이 약해야 좋을 때도 있어. 약한 게 좋은 줄 몰라.

일방적 지식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 일방적 지식으로, 있으면 망할 때에 있기를 원하니까 망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있어 망할 때에는 있는 걸 우리는 물리치고 피해야 되겠고 없어 망할 때에는 있도록 해야 되겠고.

이러니까 모든 영육 금생 내세에 생사화복 흥망성쇠는 바로 보는 데에 있고 망하는 것은 다 보지 못하는 데에 있다는 요것을 알고 요 문제 해결은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실 이 없습니다.

요 문제 해결하는 길을 갈라고 하면은 세상은 방해합니다. 방해하는 자에게 다 방해를 받는데 요거 바로 보는 것이 바로 보지 못하면 살아 봤자 필요 없는 줄 알고 바로 보는 건 자기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그 가치성을 아는 사람은 방해받지 안하고 자기가 보는 자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세상 방해에 제재 받지 않습니다.

방해에 제재 받는 사람은 그 보는 것의 가치가 자기의 생명이나 세상 뭣만 못하다고 그렇게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는 바로 보는 지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과연 내가 가고 있는 것은 바로 보고 가고 있는지! 바로 보고 못 보는 데에 우리 금생과 내세 영육의 모든 것의 흥망성쇠는 다 달렸다는 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요 주님 앞에 용납을 받을 사람입니다.

2014년 3월 23일, 04, A+, 222, P.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