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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목사님 설교집

믿음의 비밀

윤봉원 2014.02.01 22:32 조회 수 : 1411

81-06-28 주전히 11:1-4날자: 1981년 6월 28일 주일 오전

제목: 믿음의 비밀

본문: 히브리서 11장 1절 – 4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1. 믿음은 무엇인가?

1.1. 성경을 참되다 인정하고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

믿음의 비밀에 대해서 증거하려고 합니다. 믿음의 비밀이라 말은 믿음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그 길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가 끝이 없기 때문에 이 믿음에 대해서 사람들이 다 알지를 못하고 끝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비밀이라 그렇게 표현을 성경도 한 것입니다.

그 믿음은 어떤 것이 믿음이며 믿음이 작용하는 일을 어떤 작용을 하며 또 믿음이 맺는 그 결실은 어떤 결실을 가지는가 하는데 대해서 증거하려 합니다.

첫째가 믿음은 무엇인가? 또 믿음은 어떤 역사를 하는가? 둘째 셋째에 믿음이 무슨 결과를 맺는가? 하는 이 세 가지를 증거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믿음은 순종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두 가지 순종이 합해졌을 때에 온전한 믿음이라 그렇게 말하고 마음만으로 순종하는 것을 말하기를 믿음이라 몸으로 순종하는 것을 믿음이이라 또 이 두 가지 순종이 하나가 되었을 때에 온전한 믿음이라 그렇게 성경에 표현했습니다.

여기 믿음이라고 믿음은 한 이 믿음은 온전한 믿음 또 인정 믿음 또 행한 믿음 이런 모든 것을 포함해서 믿음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믿음은 순종인데 하나님께서 문서로 우리에게 이것은 이러하다 저것은 저러하다 가르쳐 주시는 일이 있고 또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이것은 하지마라 이렇게 이 문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마음으로 성경이 말씀하신 이 도를 참되다 인정하는 그것이 첫째 마음으로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아무리 성경이 그렇게 말해놨지만 그럴까 하면 의심이요 믿음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면 그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아 성경이 말씀하신 그대로 그러하다 변동 없는 인정을 가졌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마음으로 순종하는 믿음이라 이렇게 합니다.

그대로 행동을 하면 이제는 몸으로 순종하고 마음으로 인정한 것을 몸으로 행동하니까 온전한 믿음이 고면으로 됐습니다. 개별적으로는 고게 온전한 믿음이 됐습니다.

1.2. 하나님의 섭리 인도에 순종하는 것

또 하나는 하나님이 이 성경 말씀만 가지고 우리에게 알려 준대도 우리의 심령이 밝으면 넉넉히 모든 것을 충족히 알 수 있지만은 우리 심령이 어두운고로 하나님이 섭리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중간반 반사들 피곤해서 조는데 졸면 헛일이요. 그 선지자 노릇하는 것이 자기 구원되는 거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문서만으로 깨닫지 못할 때에는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이 그 현실들은 운용해서 이렇게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섭리로 우리를 인도한다. 섭리 인도라 섭리 교훈이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 나는 이번에 이 사업을 해야 될지 안해야 될지 그 도무지 판정이 안나내. 성경보고는 아무리 해도 뚜렷이 판정이 안난다 이럴 때에 자기가 그 사업을 할라고 하니까 어쩐지 신앙생활이 흐려집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실수를 안 해도 될터인데 실수가 됩니다. 그러면 그기 하나님의 섭리로 내가 이거하면 결국은 믿음에 손해보고 구원에 손해 보니까 하지 말라는 그런 섭리인 것입니다.

또 자기는 해야 될지 안해야 될지 모르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심대로 살라고만 하는데 그 상관없는 사람이라.

또 모든 그 이 자연들이 그 모든 것이 되도록 자꾸 그래 몰아넣습니다. 그래 됩니다. 나는 판정 못했지만 하나님이 이 섭리하시는 섭리가 이일을 자꾸 되도록 이래 하는 것 보니 아마 하나님이 이거 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주님의 섭리를 가지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섭리로 우리를 인정하시는 그 안되를 자기가 인정을 하고 고대로 순종을 해나가면 그것도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1.3. 영감 인도에 순종하는 것

또 하나 믿음은 이것도 다 외부적이요 외부적인데 이러면 하나님이 속에 알맹이로 요구하시는 것은 이제는 그 양심을 이 믿음을 지키는데서 깨끗이 닦았습니다. 마치 거울을 먼지 앉은 거울을 닦으면 환한 것처럼 무문서 계시의 이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이 섭리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살다 보니까 자기 마음이 깨끗해지고 생활이 모두다 정리가 되고 자꾸 이래서 그 인품이 깨끗해지고 정신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차차 깨끗해집니다. 깨끗해지면 이제는 성령님이 자기에게 감화 감동 시켜주시는 것 그 성경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더 세밀한데서 이렇게 영감시켜 주시는 성령의 인도가 자기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인정하고 이대로 실행을 하는 것이 또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첫째로 문서를 따르는 믿음이 있어야겠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믿음이 있어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성령이 감화 감동시켜 주는 데에 따르는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구원은 다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믿음이 아니고는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방편된 되는 믿음은 이제 말한대로 이 세 가지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순종이라 이것을 믿음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역사

2.1. 소망하는 것을 실상으로 이루어 줌

그러면 둘째로 믿음은 어떤 역사를 이루나 믿음이 무슨 일을 하느냐 믿음이 하는 일은 두 가지 일을 합니다. 믿음이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소망하고 있는 모든 소망을 그것을 실상으로 이루는 일을 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가 육의 모든 좋은 것이나 천국의 좋은 것이나 이런 것들을 이 믿음이 이것을 실상으로 만들어 줍니다.

또 우리가 이러한 싫은 것, 저런 싫은 것, 우리가 싫고 이것은 없었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것, 다 제거하면 좋겠다 싶은 그런 우리에게 분리하고 싫어하는 더러운 것들이 우리에게 많이 끼어 있습니다. 우리 인격에도 그러하고 위에도 그러하고 사업에도 그러하고 소유에도 그러하고 또 우리가 사람을 사귀는 그 모든 사회에도 다 그런 것이 있고 잇데 이런 것들을 우리가 다 이것이 이뤄 졌으면 좋겠다 좋은 이런 것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그것우리 소망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소망하는 그것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 가지 그것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 가지 순종을 하면 당장에 우리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세 가지 이 순종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게 섭리에 영감에 순종을 하면 우리가 어떤 좋은 것을 소원했든지 그 좋은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차차 되 가고 또 지식이 되 가고 또 경험과 체험이 되어가고 행동이 되 가고 또 내 사회가 정리가 내기 사회 말이요. 아무리 온 사회는 더러워도 자기 사회는 깨끗할 수 있습니다. 자기 사회가 자기 생활이 또 자기가 소원하는 욕심도 잡은 많은 데 또 욕심이 이 소원이 그 성품이 성질이 이런 것들이 차차 차차 요 믿음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소원하는 큰 그 소원을 능히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자꾸 되어져 갑니다.

마치 복숭을 원하는 사람이 복숭씨를 심었으니 나 그 나무가 일 년 자라고 이태 자라고 3년 자라고 3년 만이면 벌서 복숭이 적은 수라도 열게 됩니다. 이거 모양으로 우리가 어떤 것을 소원했든지 소원하는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그 순서가 자꾸 성장되 나갑니다. 자꾸 그렇게 변화 되어서 우리의 소원하는 것이 성취가 되도록 모든 조건들이 구비해 가고 또 실력들이 다 구비되져서 이렇게 가서 마침내 우리가 소원하는 그 소망하는 좋은 것이 다 이루어지고, 우리가 이런 것은 우리 인품에 치료 됐으면 좋겠다 행동에 치료가 됐으면 좋겠다 재가 사람으로 더불어 이런 모든 교제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것들도 치료가 됐으면 좋겠다 내 활동에도 이런 면 치료가 됐으면 좋겠다고 싶은 그런 모든 잘 못된 것들의 치료가 차차차차 되어서 그것이 우리가 소원하는 대로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모든 것들을 실상으로 만들어 내는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믿음이 하는 일입니다.

2.2.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 준다.

또 믿음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고 하니 보지 못한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인생이 볼 수 없는 것을 이 믿음이 차차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온갖 면을 다 보여 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이나 접촉하는 것이나 이런 것들을 한 말로 말하면 나타난 것들이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타난 것들이라 나타났으니까 우리가 보고 듣고 접촉하는 것입니다. 뭐 물질이든지 사람이든지 운동이든지 역사든지 나라든지 무엇이든지 나타난 그것을 우리가 보는 것인데 나타난 이것은 나타나지 아니한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타난 그것이 나타나기 전에 그 나타난 것의 근거가 있습니다. 그 근거는 사람들이 보지를 못합니다. 보지 못하는 그 근거가 있은지 후에 그 근거에서 모든 보이는 것들을 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씀하시기를 나타난 것은 여게 말씀하시기를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보이는 것 나타난 것 이것이 나타나기 전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되기 전에 그 전에 근거에 있습니다. 근거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보지를 못합니다.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현재에 나타난 이것 말하자면 역사세계에 것 이것만을 사람들이 가지고 이렇게도 추론도 하고 추측도 하고 추상도 하고 이렇게 하나 이것이 나타나기 전에 어떤 그 볼 수 없는 것으로 되어있던 그것은 사람이 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믿음이라 모든 존재에 있어서 하나 예를 들었습니다.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 하시가지고 모든 세계가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압니다. 모든 선진들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는 이렇게 모든 보이는 이 창조물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창조로 말미암아 된 것인 것을 우리는 알지만 이신론 자들은 전혀 모릅니다. 또 세계 학자들이 이것이 그들의 머리를 일생동안 썩히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 보이는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로 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창조로 된 것인 이것을 그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로 된 이 사실을 부인하니까 이 보이는 이것들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이것이 오늘 가지의 학자들이 머리를 썩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됐을까 저렇게 됐을까 하는 것이 이것이 모든 인간들의 두뇌에서 연구하는 것의 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만 하나님이 창조했다 하는 이것이 잘못안기 아니라 역사의 수많은 학자들이 머리를 참 알면서 온갖 말다 해 놓은 그거는 다 틀렸지만은 하나님의 창조했다 하는 이것은 맞았다 그말이요. 그 여려 수 천년 동안 머리를 알면서 연구해도 모르는 그것을 우리는 당장 알아 당장도 알았다 이기요 이기 뭐 믿음으로 안 것입니다. 그것은 무신론자들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창조라는 것을 그들은 인정을 안합니다. 인정 안하기 때문에 창조라는 그것을 창조 인정하는 기독자들 어리석다 이렇게 그들이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리는 이 사실을 안 것이 이것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알게 됐습니까? 알게 된 것은 믿음인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악령과 이 죄악의 을 향해서 가던 것을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이 중생시킨 이 중생의 은혜 이것이 기본믿음입니다. 이것을 믿음의 씨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씨로 또 인해서 우리에게 이 건설믿음 우리에게 주셨을 때에 성령의 감동이 건설 믿음을 주셔서 우리가 선물인 믿음을 받아서 이제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했다 하는 것이 천하 인간이 다 부인(否認)해도 부인이 안 됩니다. 확신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주의 십자가의 공로와 진리와 성령의 역사인 이 기본믿음과 인해서 우리는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함으로 됐다하는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이 지식이 천하에 있는 학자들이 모릅니다. 기독자만 알지 그들은 안다고 해도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말한다 그렇지 그들은 사실 이거 기독교에서 믿는 이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하신 예수님이 모든 만물을 세상에 지었다는 것을 기독자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들이 입으로는 말해 기독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는 거는 논설 할 수 있지만은 그들은 알지는 못합니다.

하나 예를 들었는데 이와 마찬 가지로 모든 보이는 것은 그것이 나타나고 난 다음에 인간이 알지 나타나기 전에 것은 모릅니다. 나타기 전에 것은 모르는데 나타나기 전에 것을 아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라 그 말은 그만 나타나기 전에 것을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이렇다 하니까 자기가 그렇다 따라서 인정을 해서 인정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영감인도 이 성경 말씀인도 섭리 인도를 하나씩 둘씩 사소한 일에 나마 고걸 순종하고 보니까 순종하다 보니까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가 됐습니다.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가 되니까 성경이 말씀에 이 나타난 것이 나타나기 전에 있었던 그 사실을 성경이 말해도 사람이 말해도 믿어지는 않던 사람이 믿어지는 사람이 되어 집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세상도 만물로 다 주님이 지으셨다 주님이 짓지 안하신 것은 하나도 없다 하는 것을 성경이 기록하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지식으로 다 그렇게 아록 있습니다. 또 그렇게 말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주님이 지으신 이 사실을 지식하는 지식의 도수와 정도와 그 양과 실력은 사람이라면 열사람이 다 다릅니다. 여게 있는 사람을 다 뚜드려 뭉쳐도 한 사람의 아는 그 아는 것만치 그 양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여게 있는 우리 아는 것이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든 존재는 하나님이 창조 하신 것이라 하는 것을 아는 그 지식의 전체의 뭉치보다 양이 더 많은 수도 있고 시력도 더 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데서 되어지느냐 자기가 문서인도 섭리인도 영감인도, 그 인도를 하나둘 받는 가운데에서 자기도 모르게 사람이 차차 고쳐집니다. 사람이 고쳐서 참 사람이 점점 되어지니까 이제는 병신이 병이 나으니까 이제는 모든 활동을 제대로 생각했는 걸 제대로 하고 병이 있을 때에는 병에게 충성 받아서 그 모든 생각이 정상이 아니지만은 이제 그 만 병이 치료가 되니까 생각도 정상이 되고 또 그 사람이 정신병이 된 환자가 돼 있다가 그기 치료가 되니까 차차 그 모든 견해나 그런 것이 정상으로 되는 것처럼 이제 세상이 말한 대로의 요정의 정상의 사람이 되는 기 아니라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이 요구하시기를 하나님 같은 온전한 사람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깨끗한 사람으로, 이렇게 표준한 이 표준대로의 점점 가까와지는 이 사람이 되어집니다. 이럴 때에 비로소 나타난 이것이 나타나기 전에 있었던 인간이 모르는 그 보지 못하는 그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보게 됩니다.

요거 좀 믿음으로 되지 안하면 모릅니다. 믿음으로 자기가 보지 못한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믿음으로 인해서 자기가 차차 변화 되고 변화 돼어 사물을 보니까 사물에 환하이 나타납니다. 이런데 성경이 말해 준 것이 말을 안해 줘도 그럴 것이라 이 자기 마음에는 그런데 성경에 말해 주니까 아멘 자기의 의사와 성경에 딱 맞으니까 보지 못한 그것을 자기가 확실히 알게 됩니다. 또 이 뿐만 아니라 영감이 알려 주시니까 또 확실히 또 알게 됩니다.

이래서 믿음은 모든 보지 못한 것을 자기에게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이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래서 자기가 보지 못한 것을 다보고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권위까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을 증거 해 주는 것이라 또 보이는 이것은 보지 못하는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뭐이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은 봅니다. 죽음은 보지 못합니다. 인간들이 말로는 죽음을 말하지만은 정말로 죽음을 아는 사람 없어요. 죽어 본사람 없어요. 죽음을 참 보는 사람 없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지 사는 그것은 보지 못하는 영원한 그것이 거기에 결과로 맺어지는 것이지만, 그래서 보지 못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떠나서 하나님 앞으로 심판 앞에 가서 섰을 때에 그때에 지나온 세상을 돌아 보고는 가슴 치지 안할 사람이 벌로이 없습니다. 무궁 세계 가 가지고는 이 지난번에 살아온 세상살이를 보고 탄식하지 아하는 사림이 없습니다. 왜 그때에 보는 무궁세계를 오늘 성경말씀에서 아무리 말해줬지만은 그기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은 살았지만은 너도 반드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은 그 죽음이라는 것을 당할 때에 사람들은 다 놀래고 경거망동하고 다 그때는 사람이 다 변해져 버렸어 사사이이 변해지고 이럴 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것이요.

이런데 보이는 것은 보이이지 않는 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미래에 보이지 않는 그것도 있고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영원무궁세계에 있는 그 보이지 않는 것도 있는데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믿음은 미래적으로 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보지 못하는 그것을 자기 가 확고하게 보게 되는 것이 이것이 믿음입니다.

다같은 사람이지만 “아 나는 죽는다 내가 오늘 이와 같이 있는 모든 이 생애가 다 손때고 가게 된다.” 하지만은 손 떼고 가게 된다는 것을 입술로는 말하지만 손 떼고 가게 된다는 이 사실을 자기가 인식하는 인식도수가 인식에 그거 강도가 인식에 대한 그 시력이 사람들에게 있느냐 없기 때문에 말은 하지만 그것을 다 무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상 현실주의 이 현상주의로 다 집결된다. 요게서만 호닥거리고 양쪽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눈을 뜨지 못하고 손을 뻣뻣히지 못하는 것이 인생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이런 경험 체험 구비 지식을 만들어서 보지 못하는 그것들을 보게 해주는 것이 믿음이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자에게 까지도 보여줄 수 있다. 믿음의 이 역사는 이 두 가지 역사를 합니다.

3. 믿음의 결과

3.1.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을 만든다.

또 믿음이 어떤 결과를 맺느냐? 믿음이 맺는 결과는 무슨 결과를 맺느냐? 믿음이 맺는 결과 큰 거 두 가지를 이루는데 큰 것 두 가지를 이루는데 이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단정 지워서 말 안합니다. 왜 여러분들이 신앙정도로 해석할 일이지 그것을 내가 단정지워 말하면 여러분들이 이행할 이는 할런지 혹은 오히려 시험에 들까 해서 단정을 안 지웁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말은 합니다.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요 믿음이 만들어 놓은 일은 요깁니다. 믿음을 만들어 놓은 결과는 요 일이요 요 일을 열매 맺었습니다. 맺었는데 증거 하심이라. 그 다음에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하느니라.’ 요깁니다. 저가 죽었으나 아벨은 죽었습니다. 형에게 그 살해를 당했습니다. 아벨은 죽었으나 믿음으로 오히려 말하느니라 ‘오히려 말한다’는 그 말은 요 말한다 말은 12장 24절에 보면 새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요 뿌린 피라 말은 이것은 예수님의 피공로를 말합니다.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4)

여 뿌린 피라 말은 예수님의 피를 말합니다. 히브리 10장 22절에 보면 예수님의 피라 하는 것이 증거가 되가지고 있습니다.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예수님의 피가 말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가 일하는 걸 말합니다. 여게 4절에 4절 하반 절에 그는 죽었으나 그는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하느니라 요것을 그 결과로 이제 말을 합니다. 믿음의 역사 믿음의 결과 믿음의 결과는 어떤 결과를 만드느냐? 믿음의 결과가 무슨 일을 만드느냐? 믿음의 결과는 하나님이 너는 의인이라 인정하는 그 의인을 만듭니다. 너는 의인이라 하나님의 인정하는 의인을 만드는 것이 믿음이 맺는 결과 입니다. 요것이 하나 또 하나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認定)하시고 만족(滿足)하시는 의인을 만드는 것이 믿음의 결과입니다.

3.2. 살아서보다 오히려 죽어서 더 많은 일을 한다.

3.2.1. 수도처럼?

그런데 또 믿음이 뭘 만드느냐? 그 다음에 그는 죽었으나 믿음이 오히려 말하느니라. 요 말씀 그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하느니라. 믿음으로서 말하느니라. 요것이 난해절이요. 깊은 속에 든 말씀입니다. 요것을 여러분들 자유라 해석하라 말입니다.

그러면 여게 말한다는 말은 역사 한다. 운동한다. 활동한다. 예수님의 피가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활동하고 있습니다. 권위 있는 건설을 예수님의 피가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말하는 것 일하시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피가 무슨 말 합니까? 하늘나라 건설은 말로 가지고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고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고 말씀으로 무궁을 다스리고 말씀으로 사람을 살리고 말씀으로 변화를 시키고 이 말한다 말은 일한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요것을 여러분 인정을 해야 됩니다.

아벨의 피보다 더 말하는 피는 예수님의 뿌린 피니라 예수님의 뿌린 피가 일한다는 그 믿음으로서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낳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니라.’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 만들었습니다. 이 믿음이 증거하심이라.

요거 둘째 하나입니다. 저가 죽었으나 저가 죽었으니 나 그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하느니라 오히려 말한다는 이 말은 오히려 일하느니라. 오히려 일하느니라. 오히려라 말은 아벨이 살아 있을 때에 일하는 것보다 더 일을 크게 힘 있게 많이 한다 고것을 붙여서 오히려 하는 말하는 것입니다. 오히려는 과거보다 더 일을 많이 한다 그말이요. 오히려는 더 한다 말이요 오히려 말하느니라 더 일하느니라 더 활동하느니라 더 권위 있게 역사하느니라. 하는데 요게 대해서 제가 세 가지로 말을 하겠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행한 그 일이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도 일을 하니 저게는 아이들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구만. 그만 과자나 저 내두고 가만히 내비둬 믿음이 일한다. 믿음으로서 일한다. 믿음이 한다. 일하는데 어떻게 일하는가? 세 가지로 한 번 생각해 보시다.

어떤 사람이 수도를 설치했습니다. 저 저수지다가 수도관을 연결시켜서 수도 설치를 해놓고 그 사람 가버렸소 가도 설치해 놓은 그 수도에서 물은 그대로 계속해서 풍풍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벨이 믿음으로 이렇게 올바른 교리 신조 요대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요 순종하는 요 순종 역사를 자기가 하고 간 것이 수도를 설치한 거와 같이 요렇게 믿음 생활을 해놓고 자기는 죽어서 가버렸는데 믿음생활 해 놓은 그것이 수도설치 해 놓은 거와 같이 그렇게 그런 성질과 같이 그런 종류와 같이 지금 수돗물이 나오고 있는 그런 역사이다.

3.2.2. 잡아 놓은 정권처럼?

또 그렇지 안하면 그 사람이 자기가 대통령이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 지위를 자기가 참 그것을 설치해서 대통령 지위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정권을 잡았는데, 정권을 잡아서 그 대통령 권위를 그대로 둬두고 자기는 저 외국에 순방하러 가고 없지만은 잡아 놓은 정권이 조직해 놓은 그 모든 정권들이 그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거와 같이 아벨이 이렇게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놓은 이 믿음의 역사가 이 정권 잡은 것같이 이런 성 쌓아서 믿음 깨트릴라 해야 믿음을 꼭 지켜서 믿음으로 승리한 이 지위를 권세를 얻어놓고 자기는 하늘나라로 가고 없어졌는데 입원 이미 점령해 놓은 그 정권처럼 믿음의 지위 그것이 지금 이일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3.2.3. 벗어 놓은 옷처럼?

또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이 그 전쟁하느라고 진흙밭에서 불속에서 뛰 돌아 다니면서 전쟁은 하다 보니까 옷은 버끔 버끔 탄데도 많고 똥도 많이 묻고 진흙도 묻고 째때도 묻고 줄기 줄기 째지고 이랬으니까 이제 그 옷을 네가 벗어 놓으면 이제는 이 옷을 벗어 놓으면 이 옷은 공으로 있는 옷이기 때문에 이웃을 벗어 놓으면 뒤에 영광스러운 존귀한 그런 시공(時空)의 제한을 받지 않는 그런 좋은 신령한 웃으로 바꿔 줄터이니까 이 옷을 벗었느니라 해서,

그 옷은 벗어 놓고 자기가 일하는 그 위치와 일터에서 그 일하기에 간편한 그 작업복을 입고 그 자리에서 일을 하는 아벨은 그는 죽었으나 사람 보기 죽었으나 죽은 것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서 줄 이 떼 묻고 불타고 째지고 흙 묻고 똥 묻은 이것은 뒤에 신령한 몸으로 갈아 줄라 하니까 그것을 벗어 놓고 이제는 일하든 그 마음과 그 몸의 기능, 그 기능은 영으로 더불어 함께 껍데기 옷 날가진 이 전복만 벗어놓고 이제 가장 일하기에 좋아서 고간에도 제한받지 안하고 시간에도 제한 받지 안하고 어데든지 뛰 돌아다닐 수 있는 이런 일하기에 가장 좋은 그 작업복을, 지금 사람들이 그 얼렁덜렁한 옷 입고 있다 가서 옷을 벗어 내버렸으니까 “아 그 사람 어데 갔구나” 아 그 사람은 아주 냄새 나는 꾸룽내 나고 그 진흙 밭에서 옷을 입고 이런 똑 문둥이 같이 거지같이 이래가지고 있었는데 그 옷을 홀딱 벗어 버리고 목욕 싹 해버리고 지금 나서니까 그 사람 어데 갔노? 그 사람 안 보이는데 그 사람이 코에 갔다가 검정이 묻었는데 그 사람 옷에서는 꾸룽내가 나는데 아 이런 데 그 옷 다 벗어 내버리고 이제 아주 깨끗한 그 작업복을 편리한 일하기에 편리한 그 옷만 딱 입고 그서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보고 “그 사람 어데 갔노? 아 그 사람 안 죽었나? 그 사람 벌써 별세 안했나 세상 떠나지 안했나?” 실은 그 사람 그 일하고 있는데,

이런 것으로 기독자가 신앙을 생활 신앙을 지킨 아벨이 죽은지 벌써 그가 벌써 죽은 지가 오랜 됐는데 근 육천년이나 다 되어가는 오늘에도 아벨은 일하고 있으니 아벨이 일하고 있은 아벨이 믿음으로 일하고 있으니 아벨이 믿음으로 일하고 있는 이것이 어떤 모양으로 일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여러분들 자유로 생각 하십시요. 예 아벨이 지금도 일하고 있다고 성경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아벨이 지금도 일하고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가 죽었으나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하느니라 오히려 말하느니라’ 말한다 말은 이거 일한다 말입니다. 일하는 것 오히려 일하느니라. 이런데 일한다 하면 하늘나라 건설에는 맞지. 말한다 해야 일하는 것이 되지. 그래 예수님의 피도 그 피공로가 일하느니라 말하자 안했고 ‘그 피공로가 말하느니라’ 이래 말해놨어.

12장 24절에 그래 이제 그 아벨은 죽었으나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아벨은 죽었으나 살아 일을 때보다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많이 하고 있으면 그는 죽었는데 그는 떠났는데 일을 많이 하고 있는 수도를 장치해 놓고 장치 해 놓은 사람은 떠났지만 수돗물은 쿨쿨 나오는 거와 같이 그런 격으로 일하고 있는지? 아벨은 떠났는데 일하고 있으니 아벨이 마치 정권자가 정권을 잡고 난 다음에 그는 다른데 하고 있으니 아벨이 마치 정권자가 정권을 잡고 난 다음에 그는 다른 데에 그 외출하고 출국 했지만 자기가 이매 점령 해 놓은 지위와 권세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그런 성질로 일하고 있는지? 일하는 사람이 일하느니라고 그 작업복에 오만 흙칠 다 하고 이러니까 이제 네가 그 작업복을 벗어 놔라 이제는 좋은 옷으로 갈아 주겠다 해서 그 옷 벗어놨지. 그 옷 벗으니까 사람보기에는 죽은 걸로 돼 버렸고 이 사람은 그 옷 벗어 놓고 가장 복은 운동 인간을 살리는 운동에 성령충만 거리끼지 안하고 이렇게 성령처럼 거리끼지 안하고 주님의 공로처럼 주님의 공로처럼 거리끼지 않는 거리끼지 안하고 일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일하는 것이니까 요것이 이 세 가지 중에 어떤 것으로 일하는 것으로 여러분들이 믿는지 마음대로 자유로 믿으십시요 나는 여게 믿는 것이 하나 있지만은 여러분들께는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이 성도들이 지금 복음운동을 인해서 이 수많은 성도들이 피를 흘려서 인간을 구원할라 했는데 이 인간구원이 언제 완성이 될렵니까? 되겠습니까? 이렇게 하니까 두루마기를 주면서 너와 같은 그 숫자가 차기를 좀 기다려라 했는데 그분들이 일하는 그것인 그분들이 무궁세계 하늘나라 가서 있으면서 하는 것인지? 그 영물들이 이 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은 여러분들이 자유대로 생각을 하십시오.

그러나 분명히 요거는 아십시요. 믿음으로 산 고 생애의 믿음으로 산 그 생애는 설치해 놓은 수도같이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한 고 생애는 잡아 놓은 정권이 자기는 떠나도 일하는 것 같이 그래 일하든지, 믿음으로 한 생애는 옷은 죽음처럼 옷 벗어 놓은 것처럼 죽음은 옷 벗어 논 것처럼 벗어 던지고 이제 새걸로 갈아입게 벗어 던지 버리고 자기는 그 속에 그 영과 심신의 기능은 그대로 이 복음 운동 생명의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 고것을 자유로 여러분들이 깨달은 대로 하십시요. 나는 말하고 싶은 말이 이지만은 그 말은 내가 이 자리에서 못합니다. 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오히려 그 오히려 힘들까 해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 깨달았고 여러분은 여러분들대로 깨달았고 깨달은 대로 여러분 하십시오.

그러나 분명히 믿음으로 한 생활은 영생입니다.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벨의 기능은 지금도 일한다 했습니다. 지금도 일한다 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벌써 근 이천년 전에 골고다에서 흘린 피지만은 그 피의 기능은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그 피의 능력이 일했습니다.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것이 그 피의 능력이 우리 속에서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 피는 죽었으나 그 공로와 그 피의 대속하신 그 공로의 피의 권능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믿음으로 어떤 것이 믿음이며 믿음으로 어떤 역사를 이루며 믿음은 어떤 결과를 맺는가 하는 것을 이 시간에 우리가 생각했습니다.

4. 믿음보다 더 크고 권위 있고 보배롭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

믿음은 순종이요 세 가지에 대해서 심신의 순종이요, 믿음의 역사는 우리가 좋은 것 나쁜 것 영원한 그 모든 것이 완성이 되는 것이 나쁜 것 제거하는 그것이 다 완전히 제거 되고 좋은 것 원하는 그것이 완성이 되는 이것을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역사를 하는 것이 믿음이요. 당장에 안 된 그 사람으로 점점 되어가서 마침내 마지막은 완성이 되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늦게 서둘렀으면 다 안 될 것이고, 하다가 중단 했으면 안 될 것이고, 믿음으로 계속 하면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만든다.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다 보여 주고 알려 준다. 보지 못하는 것들을 어떤 것인가 사람들은 입지지 못하는데서 보이는 것이 나왔고 보이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으로서 영원과 이 세상에서 다 앞으로 그것이 타락하든지 진출하든지 한 하나님이 하는 것인데 인생은 한 토막 한가운데 한 토막 보이는 것 요거 밖에는 보지 못한다. 아무리 말해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말해도 귀에 두드리지 않는다는 사람이 그런 사람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믿음은 이제 보이지 않는 그 과거사를 볼 수 있고 미래사를 볼 수 있는 이 사람으로 만들어서 보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만드는 결과는 뭐이냐 하나님은 참되다 온전타 의롭다 인정할 수 있는 자기를 만다는 것이 믿음의 이 결과다. 믿음은 자기는 떠났지만 자기는 일하기를 이 세상에 있을 때 보다 오히려 일을 강력하게 권위 있게 능률적으로 더 하고 있다는 이 결과를 맺는 것이 믿음인 것인데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믿음을 업신여기지 맙시다. 믿음으로 버리고 취할 것 없습니다. 믿음 보다 우리에게 더 큰 수입은 없습니다. 가치 있고 귀하고 권위 있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안겨 주는 것이 믿음보다 더 좋고 보배로운 것을 우리에게 안겨 주는 것은 없습니다.

2014년 2월 1일, 04, A+, Bongwon Yoon.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