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OP
  2. BOTTOM
  3. SITE MAP

백영희목사님 설교집

큰 환난에 대한 올바른 시각

윤봉원 2013.12.06 20:12 조회 수 : 1447

81-07-21 화새막 4:35-41날자: 1981년 7월 21일 화새
제목: 큰 환난에 대한 올바른 시각
본문: 마가복음 4장 35절 – 41절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1.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시는 방편은 다양하다.
성경에는 맛배기로 글을 써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그런 방편도 있습니다. 또 어떨 때에는 어떤 사건을 일으켜 가지고 또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데도 있습니다. 또 어떨 때에는 이런 모양 저런 모양의 일들을 일으켜서 우리에게 만날 그런 구원의 길들을 가르쳐 주는 일도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대개가 이 상징적으로 기록이 됐습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그 계시록을 문서대로 해석들 하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문서대로 해석하면 아무 것도 안되고 거게 뱀을 마귀를 뱀으로 상징했습니다. 또 마귀가 큰 권세로 나타날 때를 용으로 그렇게 상징했습니다. 또 마귀가 이제는 분개하고 대노해 가지고 성도들을 해롭게 할 때에는 붉은 용으로 그렇게 상징을 했습니다. 또 전쟁이니 바람이니 하는 이런 것을 그 말들로 이렇게 상징도 하고 폭풍이니 바람이니 이렇게 바람으로도 상징을 했습니다.
2. 큰 광풍은 신앙생활을 못하게 하는 큰 환난을 의미함
성경에 여게 광풍이 불었다 아주 미친바람이 불었다 그러면 이 바람은 우리에게 무엇을 지금 가르칠라고 이렇게 바람이 불게 하나님이 하셨고 또 불 때에 제자들이 놀래고 그랬는가? 이 바람은 우리로 말하면 이런 정치 바람 또 사회 바람 종교 바람 공산주의 바람 이 운동 전쟁 모든 역사 그런 것들을 바람으로 상징해서 우리에게 교훈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바람은 이것은 전쟁이라 운동이라 그렇게 해석하면 바른 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게는 미친 바람이니까 아주 혹독한 운동입니다. 한 6.25 같은 것 외정말년에 신사참배 같은 것 또 로마에서 종교 탄압하는 그런 레오 황제 때에 아주 그 믿는 사람을 다 잡아 죽일라고 하는 그런 일들 그런 것이 다 바람들이요. 지금도 우리 개인적으로 믿는 데에 크게 환란이 일어나 환란되는 그런 가정 바람도 일어나고 어떤 데에서는 가족 바람도 일어났고 또 어떨 때는 자기들의 직장 회사에서 평소에는 안 그렇더니만 신앙에 대해서 반대하는 그 아주 운동이 직장에서 일어날 때에도 있다 이기요.
또 교회서도 이 교계에서 예수를 바로 믿지 못하게 인본주의 바람이 일어나고 또 이거 진리에도 있지만 불 바람이 일어나고 뭐 예언바람 지시바람 이런 바람들이 또 일어나 가지고 사람들을 신앙생활 바로 하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있다 이기요.
우리가 여 가르치는 것은 바람은 운동들이고 바람이 불 때에 물결이 그 바람에게 피동되 가지고 형용합니다. 그러면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어서 바람이 또 이 배를 해하는 배는 이거 교회를 상징한 것인데 바람이 교회를 해하고 또 바람에게 이용된 그 인물들이 이것들이 또 교회를 해하고 고 그런 것을 상징해서 강풍으로 이렇게 이런 역사적 형식을 취하신 것입니다.
2.1. 6. 26와 왜정 환난
예를 들면 6.25 전쟁은 그것은 바람이 되겠습니다. 6. 25 전쟁은 바람이 되겠고 또 그때에 인민군들이 와서 교회를 해치는 그런 것은 또 물결이 되겠습니다. 그 물결이 배 안에는 없어야 되는데 물결이 배 안에 들어와서 배가 배 안에 가득차고 그 물이 배 안에 들어와서 가득차면 결국은 그 배가 물속에 잠기지 않겠습니까. 잠기면 다 죽지요. 이 물은 이 세상을 상징합니다. 이 물은 이 세상을 상징하는데 물이 배 안에 들어와서 가득찼다. 이제는 세상 이 바람 운동에 역사로 인해서 세상이 들어와서 교회 안에 가득찼다 이기요. 세상이 들어와서 교회 안에 가득찼으니까 교회는 물에 빠지면 죽는 거와 마찬가지고 교회가 세상에 이제는 파묻히게 되면 세상에게 그만 빠지게 되면 이거는 교회가 죽는 것이라 이기요.
그 외정 말년에도 일본 그 정치 바람이 불어 가지고 일본 나라에 속한 그 인물들 모든 총독들 또 그 경찰서 형사들 또 부장들 이런 사람들이 그 운동에 동원되어서 교회를 박해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만 못 견뎌서 신사참배도 다 하고 또 심지어 천조대신이라는 그 이름으로 세례도 주고 마구 교회라 하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 교회 안에 가득 들어와서 교회는 전부 그런 교회가 되고 말았다 이기요.
아침에 주일날 예배볼라고 하면 예배 보기 전에 지금은 묵기도 하지만은 그때는 묵기도 하기 전에 다 예배 시작 하면 일어섭니다. 일어서면 저 동쪽으로 향하고 그러면 동쪽으로 쭉 돌아섭니다. 일본 있는 대로 돌아섭니다. 또 일본 천황폐하에게 절을 하고 하면 절 다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예배를 봅니다. 그러면 이것이 여게로 말하면 물이 배 안에 들어와서 배 안에 가득찬 거와 같다 말이요.
3. 아무리 큰 환난도 예수님이 계시면 해가 되지 않는다.
교회에 그만 세상 세력이 들어와서 가득찼습니다. 그러니까 신앙 있는 사람들이 견디다가 견디다가 마지막은 견디지 못해 가지고 그만 무서워 하면서 이렇게 주님 앞에 우리가 죽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들 바람은 죽일 권리가 없습니다. 또 물결도 죽일 권리가 없습니다. 그들이 공연히 속아서 그러하지 주님이 그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데 죽일 권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바람이 없이 그래도 하나님이 주님이 죽일라면 죽이고 살릴라면 살립니다.
이런데 사람들은 그만 그때에 바람을 명령하시니까 바람이 순종하고 물결이 명령하니까 물결이 순종하는 이분이신 주님을 모시고 계시면서 이분은 잊어버리고 저희들을 죽이고 살리는 그 세력이 바람과 물결에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만 무서워서 지금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물결과 바람을 명령하시면서 불지 말아라 잠잠해라 이러니까 물결이 아주 잠잠해졌습니다.
이러니까 “아 이분이 누구시기에 이 바람에게도 명령하니까 순종하고 물결에게도 명령하니까 순종하는고” 두려워하면서 그때 알았습니다. 인자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서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그 바람은 어떤 운동 어떤 정치 어떤 전쟁 무엇이 일어나도 주님이 명령하시며 주의 명령에 딱딱 복종하는 것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또 그 운동에 피동된 아무리 뭐 혹독한 인물 악독한 인물 그 인물이야 예수님과 무슨 상관있겠느냐 해도 어떠한 맹수같은 악한 인물이라도 주님께서 명령하면 주님께서 이라면 이라고 저라라면 저라고 주님에게 주권이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이럴 때에 처음에는 물이 들어와도 복랑해도 주님이 주무시니까 깨울 수가 있겠느냐 참다 참다가 그만 물이 배 안에 들어와서 하나 가득차게 되니까 야 이제는 죽었다 이제는 안됐다 하고서 그만 호소를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환란이 일어나도 견디고 견디고 좀 견디다가 난중에 심히 일어나서 그만 뭐 보니까 집사도 다 그만 넘어가버렸고 집사도 그 환란의 사람들이 되어서 그 사람들 편이 됐고 장로도 그 사람들 편이 됐고, 목사도 그 사람들 편이 됐고, 모든 교인들이 그 사람들 편이 되고 이러니까 자기 혼자 견디다가 견디다가 나중에는 고만 자기까지도 믿음 없는 사람 되기 쉽다 그 말이오.
이제는 전부가 다 이 모양이 되는구나 이제는 뭐 주님의 세력도 소용이 없고 주님은 부르기가 그 뭐 부른다고 해도 주님은 아주 아무 것도 없이 다 밀리 올라갔고 능력없는 것 같이 그렇게 주님은 무시되고 그것만 무서워집니다.
그럴 때 옆에서 있다가 ‘야 예수님’ 하니까 ‘말하지 말라 예수님 예수님을 지금 예수님을 말하다가는 다 죽는다 말하지 말라’ 또 믿는 사람이 있다가서 ‘아 그래 요새 어떻습니까.’이라며 악수를 검어지고 손을 검어지고 막 이래 흔들라고 하니까 손 검어지고 악수하면 예수 믿는 사람인줄 알기 때문에 손을 뒤로 내면서 그만 멀리서 보고서‘아 안녕하십니까.’ 그만 도망을 쳐버리고 이렇게 해서 무서워 해서 마지막에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돕지 안했으면 차차 차차 물이 들어오고 들어오고 그 배는 물속에 빠 물어져서 전부 다 죽을 것 아닙니까 그 세력에게 삼키게 될 기라 말이요.
그러면 이 제자들이 어데까지 무서워하지 안하고 참았으면 주님에게 꾸중을 듣지 안했을까? 어데까지 주님에게 무서워하지 않고 이렇게 불렀지 안했으면 칭찬했겠습니까? 주님이 주무시면 그것을 지금 모르고 주무시고 계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지 않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데까지 그러면 견뎠으면 믿음없는 자라고 책망을 받지 안했을까? 아 천지를 지으신 주님이 물결과 바다를 지으신 주님, 지금도 이것들을 움직이고 계시는 주님, 보존하고 계시는 주님 전부 주님에게 주권이 되어있는데 물에 빠져 들어가도 주님이 뜻이 계셔서 그런 것이니까 주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 가지고 잘해 주시지 하는 그것을 끝까지 바라보면서,
자 물에 들어가도 물에 들어가면 주님도 그러니까 같이 물에 들어갈 것 아니겠습니까? 저거는 주님은 누웠으니까 누가 먼저 물에 들어가겠습니까. 누가 먼저 들어가겠소. 아 주님이 먼저 물에 들어 갈 것 아닙니까? 설마 물에 들어가면 주님이 그 일어나실 것 아니겠소? 응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신앙가들입니다.
만일 그러다가 물 속에 빠져 들어가면 이제 물 속에 들어가면 만에 하나 그러다가 죽으면 어쩌겠습니까? 죽으면 주님도 그 물결에 같이 죽겠습니까? 안 죽소.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십자가의 대속할 일이 있기 때문에 안 죽습니다. 또 제자들은 물결이 배에 들어와서 배가 물속에 자물어지면 죽겠습니까? 안 죽겠습니까? 한번 대답해 봐요. 손 선생 왜왜 안 죽어. 김성도 선생 왜 안 죽어. 응 응 어째 뭐라고 하노?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안 죽는다. 주님이 계신다고 안 죽나요? 주님이 계신다고 세상을 안떠나요? 세상 떠나지.
왜 안 죽을까? 여 선생님들 한번 대답해봐. 왜 안 죽을까? 절때 안 죽습니다. 왜 안 죽을까? 응? 응? 그래 건너편에 가자 해 놨다 말이요. 건너편에 가자했기 때문에 그 피조물이 어기지를 못합니다. 반대를 못합니다. 안 죽습니다.
그러기에 이럴 때에 우리가 믿음을 잊어버리기 쉽다 하는 것을 여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이 세상 진리를 대항하는 이 운동 또 진리를 대항하는 전쟁 또 진리를 대항하는 그 모든 소동 소란 이런 것들이 이 사람들을 이용해 가지고 물결 이용하는 것처럼 바람이 물결 이용한 것처럼 거게 피동된 인물들을 가지고 우리를 박해해서 교회에 침범해 가지고 교회가 그런 것들로 가득차는 그 그런 교회가 되기 쉽다 이기요. 그럴 때에 우리가 믿음을 잊어버려서 믿음 없는 자 되기 쉽습니다.
‘믿음 잊어버렸다.’ 말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나니까 예수님을 뭐 바라볼 기 뭐있습니까? 거게 순종할 용기가 나겠습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걸 다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영으로 봐버렸는데 그럴 때에 우리가 믿음이 없어지기 쉬운 것을 여게서 보여줍니다.
그럴 때에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이루어 천국 잘 가도록 구원을 잘 이루게 하시려고 구원을 잘 이루도록 벌써 선포해 놨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환란 가운데서 순교하는 것이 구원 잘 이루는 데에 제일 유익하면 순교 될 것이고 다니엘처럼 그 죽음에서 이적적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나옴으로서 구원이 잘 이루어지고 구원 역사가 구원 역사의 유익이 될 것 같으면 그리 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구원에 유익되게 하시고 구원에 손해보이지 안할 것이라는 요것을 굳게 잡고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홀로 주권하고 계시는 요 사실을 확실히 믿고 끝까지 견디는 그 사람이 되어야 믿음 없는 사람이 안 됩니다.
그 아가서에서는 이렇게 표시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그림자가 갔으니까 이제 어떻습니까? 어둡습니까 밝고 어두운 것이 표가 납니까? 해가 있을 때에는 어두운 데와 밝은 데가 표가 나지. 은혜가 있을 때에는 그렇지 않소. 해가 있을 때에는 음지 양지가 표가 나지 않소. 해가 기울어져 버리고 그림자가 갔으면 그때 해가 그림자가 갔으면 해가 있다 말이요, 없다 말이요? 해가 없다 말입니다. 해는 주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제 해가 기울고 주님이 차차 차차 사람 보기에 인간에게서 떨어지는 것 같고 예수교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예수교가 짓밟히고 예수교가 소용없는 도같이 이렇게 보여 집니다. 해가 기울고 서산에 기울어진다 말이요. 기울고 이제 그림자가 갈 때에 그림자 갔으면 해가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이지요.
보니까 핍박만 있고 예수를 욕을 암만해도 효력도 없고 이러니까 백지 예수를 믿었다고 할 만침 그때 예수의 구원을 예수의 은혜 그 예수의 효력이 하나도 없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럴 때가 뭐이냐?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입니다. 그 그림자 그림자가 없어졌다 말이요. 그림자가 없어졌다 말은 해가 안 보인다 말이요. 그러니까 전부 다 새까매졌다 말입니다. 그럴 때에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그때에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따릅니다. 그럴 때에 사자굴 표범산에서 주를 찬양하는 그것이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4. 어떤 풍랑과 바다로 말미암아서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라.
그런고로 우리는 요 간단한 것을 말로 가지고 가르치면 참 기억하기도 어렵고 또 너무 긴데 요런 요 하나님 그 형식을 가지고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친 것 요렇게 상징적으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요렇게 말씀해 주시고 요런 것은 기억하기 쉽고 간단명료하다 그말이오. 요것을 단단히 익혀놔요.
익히놔서 아 일어날 때에 이 바람은 무엇이 바람이냐를 물결은 뭐이 물결이 나와서 형사가 와서 마구 두드리며 초사를 하면서 이러니까 이거는 뭐이 요거는 물결 이기 무슨 바람이지? 이 일본 나라에게서 지금 이와 같이 하라고 일본 행정의 바람 아닌가. 바람 또 이 세력이 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주장해서 벌써 교회 안에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사람들 사람이 다 되어 가지고 벌써 교회 안에 그런 세력들이 다 들어왔다 말이요.
이러니까 이것은 이제 바다 물결의 물이 지금 들어왔다 그러면. 그런데 이 배가 물에 빠져 들어가면 이제는 죽는다 이 바닷물은 뭐이겠느냐? 그 뭘로 상징하면 되겠습니까? 뭘로 해석하면 되요. 바다 바다물은 응 세상 그거는 세상이라 말이요. 그 교회가 세상에 빠져 들어가 버리면 그만 빠져 버리면 그만 교회는 죽는 기라 말이요.
이제 점점 빠져 들어가게 되니까 아 인제 벌써 집사들도 거의 다 넘어가 버렸고 장로들도 넘어가버렸고 심지어 목사도 넘어가버렸고 이러니까 다 넘어가고 이제 뭐 몇 사람 남지 안했다. 이 진리를 지키는 그 사람이 몇 사람 남지 안했다. 그럴 때에 무서워하기 쉽다 말이요. 그럴 때에 무서워한 것은 무서워한 것은 뭐 어떻게 해서 무서운 것이 뭐 무서움이 왜 무서움이 생겨졌어.
그들이 무서움이 생겨진 것은 믿음이 없는 건데 믿음이 없다 말은 주님은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그들이 잊어버렸지요. 주님에게 대해서 무식한 사람이 되어버렸지요. 이러고 인자 바람과 물결에 대해서만 그들이 더 깊이 깊이 인식이 되어서 바람과 물결만 무섭고 주님은 아무 것도 아닌 걸로 보여지지 아 그래 놓으니까 ‘그것이 참 우리 따라와도 잘못 따라 왔네.’ 흔들면서 ‘아 주님 우리가 지금 이렇게 물결에 죽게 됐는데 지금 잠만 쿡쿡 자고 있습니까.’ 그들이 주님은 어떻게 생각한지 모른다 그 말이오. 잠만 자고 있습니까?
이러니까 그래 일어나시디만 바람이 잠잠해. ‘물결아 잠잠해’ 이러니까 바람과 물결이 그만 달아납니다. 순종해서 딱 잠잠하고 잠잠해지니까 그제야 무서워서 ‘아이구 주님이 물결보다 크구나! 이분이 바람보다 크구나!’그때사 그들이 알고 회개를 해서 했다 말이요.
이러니까 주님이 있다가 말씀하시기를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너희들이 나를 믿으며 무서워 하느냐? 너희들이 나를 부인하고 있는 자가 아니냐. 주재가 내가 계시는데 내가 있는데 너희들이 무엇 때문에 무서워 하느냐. 내 명령 일하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너희들이 알고 말하고 있으면서 왜 무서워 하느냐. 나를 믿지 않고 나를 인정치 아니한 연고 아니냐. 응 너희들에게 어찌 믿음이 하나도 없느냐. 내게 대해서 어찌 전무식이 됐느냐. 내게 대해서는 하나도 소망하지 않고 의지하고 하지 않고 이렇게 나와는 상관을 완전히 끊어버린 자가 되어 있지 않느냐.’그 말을 합니다.
응 그럴 때에 요런 계시 말씀을 딱 검어지고 해석을 합니다. 목사님이 강풍이 볼 때에 믿음 없는 자로 믿음 없다고 성도들이 믿음 없어 책망 받은 일이 있는데 그때 믿음이 없어졌지. 평소에는 믿음이 있다가 이 광풍이 부니까 믿음이 없어졌다. 베드로가 바다 물 위로 걸어갈 때에는 믿음 없다 소리 않고 믿음이 적다고‘적게 믿는 자여’했다. 여는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셨다. 이럴 때에는 참 믿음을 완전히 마귀에게 빼앗겨서 아주 믿음이 하나도 없는 사람 되기 쉽다.
이러면서 척 이 말씀을 검어 쥡니다. 검어 쥐고 야 바람은 무슨 바람이지? 6.25 공산주의 바람이 아닌가? 6.25 전쟁 바람이 아닌가? 응 그런데 인민군이 와서 탄약을 짊어지고 가자 안되니까 탄환 짊어지고 가는데 책임자로 가라 또 방위하러 나오라 자꾸 이래 가지고 그들이 이용할라고 자꾸 이렇게 야단치니 이래 가지고 요렇게 모략을 해 가지고 다 져 가지고 어데 그 교회만 떠나면 그만 모른데 가서 쏴 죽이 버릴라고 이렇게 할라고 애를 쓰고 하는 이것이 요거는 뭐이지? 요기 물결이로구나!
또 배는 뭐이지? 곧 세상에 둥둥 떠 가지고 세상에 있지만은 세상에 파묻히지 않고 세상을 발아래 두고 이렇게 뜨는 것이 교회가 아닌가? 그런데 교회 안에 물이 들어와 버렸다 인자 이 교회 안에 전부 이 공산주의 세력이 다 들어와서 공산화 됐다 그기요.
저 호남 방면으로는 교회 안에 전부 예배당에 인민군이 다 들어왔어. 인민군이 전부 예배당에 인민군이 다 들어왔고 그들에게 전부 자수 다해 버렸고 예배당에도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자수도 했으니까 전부 교회 안에 그들의 세력이 다 들어왔다 이렇지만 이 영남 지방에는 그렇지 안해요. 않고 그들이 예배당을 점령한 곳도 있기는 있었습니다. 있는 그거는 다 절단나 버렸습니다. 거창은 제가 아는데 거창은 예배당을 점령한 예배당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전체적으로 자수한 그런 교회도 없었습니다. 그 못 들어왔다 방해는 풍랑이 못 들어오지마는 거는 못 들어 왔지만은 온 전국적으로 다 물결이 들어왔다. 이럴 때에 믿음 없는 자 되기 쉽다.
믿음이 없다고 주님한테 책망 받는 자가 될라면 어떻게 하면 믿음이 없는 긴가? 이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이때에 잊어버려서 전능하신 주님으로 모시지 못하고 전지하신 주님으로 모시지 못하고 창조주 주님으로 모시지 못하고 주권자 주님으로 모시지 못하고 이 모든 것을 홀로 조정하고 계시는 주님으로 모시지 못하고 주님은 아무것도 아닌 헌 신짝같이 헌신짝같이 가치 없이 보이고 마구 그 세력들만 크게 보이는 이것이 믿음 없는 것이라 말이요. 그럴 때에 나도 믿음 없는 자 되기 쉽다.
이러니까 이제 눈을 감고 명상을 합니다. 자꾸 명상을 하면서 ‘주님을 주님이 창조자 이 인민군 이걸 누가 지었어? 주님이 지었다. 이것도 주님이 지었다. 이것 오는 것이 주님이 그 명령에 따라서 지금 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 움직이는 것도 주님의 힘이다.’ 이렇게 이제 주님이 주권하여 모든 주님에게 대해서 바른 깨달음을 가지니까 속에 힘이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내 앞에 보이기는 인민군이지만은 배후에 사랑하는 주님이 요것을 통해서 날 지금 사랑하고 나를 엿보고 내가 어떻게 하는가 보자 하고 지금 딱 숨어 가지고 내 행동을 지금 살피고 계시는구나!’
이래서 이것을 아가서는 뭐라고 표현했지요?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하는 자가 창살 틈에서 나를 보고 계신다.”고 그 방안에 있으며 창구멍으로 방안에다 말이요 방안에다가 구멍을 딱 바늘도 똑 뚫으면 구멍이 안 뚫히요. 구멍이 뚫혀도 그 바늘구멍으로 봐도 마당에 돌아다니는 것 다 보입니다. 다 보이되 마당에서는 안에 보이는 기 보입니까? 이렇게 주님은 내기에 내가 보지 못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데에 숨어 계시면서 내 행동을 어떻게 하는가 살피고 계신다.
이래서 그 표현해 창살틈에 “나의 사랑하는 자가 창살틈으로 나를 엿보는도다 나를 엿보는도다.” 요렇게 표현했다 말이요.
이러니까 이제 이 종이로 가리워져 있는 그 넘어 사랑하는 자가 그 틈으로 나를 보고 계시고 있는 것처럼 앞에는 이 인민군이라는 종이 또 일본 또 형사라는 종이 이런 무슨 김일성이라는 종이 이런 것 이런 것이 내 앞에는 닥치지고 그 너머는 주님이 지금 그를 통해해 가지고 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면 나를 얼마나 바라며 얼마나 의지하느냐 하는 걸 지금 엿보고 계신다 그말이오.
이것을 깨닫고 주여 주여 주님이 있는 것 다해서 나를 사랑하였으니 나도 있는 것 다해서 주님을 한번 사랑하고 싶습니다. 광풍아 불어라 어쩌든지 이 공산주의가 나한테 박해하는 것이 물러갈기 아니라 소박해가 대박해가 됐으면 좋겠고, 간단한 박해가 긴 박해가 됐으면 좋겠고, 심한 박해가 되어서 어쩌든지 나도 소유와 몸과 생명을 주를 사랑함으로 주를 사랑함으로 다 없애는 이제 모든 것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이 사랑을 한번 해보자 하는 요것을 자기가 깨닫고 점점 더 심하기를 원하면 하나님께서 참 그래도 사랑해서 더 심하게 해주시는 그거는 사랑하는 순교자입니다. 마귀라는 놈들은 요걸 깨닫고 나면 하 이기 이거 저거 이거 주님하고 이 성도하고 둘이 밀접하게만 만들어졌구나 해서 그것들이 뒤로 물러갈 수도 있고,
또 그 마귀가 또 실은 뭣 때문에 있느냐 하면 주님과 성도 사이 밀접해서 성도의 구원을 잘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마귀가 있는 것이지 성도의 구원을 방해하기 위해서 있는 마귀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럴 때에 자 보자 인자 물이 어지간히 들어온다. 또 배가 지금 자물어진다. 인자 교회가 예배도 못보고 그만 예배도 못보게 한다. 이북에는 지금 이 배가 물속에 들어갔소, 안 들어갔소? 응 들어갔소, 안 들어갔소? 물속에 들어갔다 말입니다. 들어가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물 속에 들어가도 믿음만 놓지 아니하면 믿음만 놓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권하셔서 내 구원을 이루고 당신과 나와의 밀접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한다는 요걸 굳게 잡고 요동치 아니하고 그대로 세상을 뜨면 그 무슨 사람입니까? 그기 뭣 한 사람이지요? 응 응 그기 뭣 한 사람이요? 응 응 뭐라하노? 순생 그러다가 세상을 떳는데 순교 그기 순교입니다. 그기 순교요.
그래 예수님께서 그들이 죽일라고 할 때에 안 죽음으로 이겼습니까? 죽음으로 이겼습니까? 녜 죽음으로 이겼소. 죽음으로 이겼다 말은 그들은 예수님을 범죄케 할라고 애썼지만은 주님은 범죄하지 아니하고 자 매를 맞아도 범죄하지 안해. 십자가 못박아도 범죄하지 안해. 마지막에 생명이 언제 범죄하지 안했을 때에 완전히 최후 승리를 했습니까? 응 생명이 끊어져도 범죄하지 않고 범죄하지 않는 것으로 생명이 끝났으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더 시험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응 더 할 수 없지요. 이제 끝나지 안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이루니 완전히 다 승리했다.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주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안심하라 내가’ 뭐라했소? ‘너희들은 세상에 있으나 안심하라 세상이 너희들을 미워하지만은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이것이 완전히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이 있어. 무궁세계 있어. 하나님이 계셔. 이러기 때문에 믿음 없는 자가 안 되고 믿음 있는 자 된 것은 주님이 이기심 같이 최후까지 생명이 끊어지는 데까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으로서 끝을 났으면 이제 완전히 이긴 것입니다. 주님이 이기심 같이 세상을 이겼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뭐 있지요? 영광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그럴 때에 요 도리를 자기가 깊이 평소에 많이 새김질하고 기억하고 있다가 요 진리로 가지고 그 모든 것을 이기야 됩니다. 진리로 이기야 되요. 그러면 이 환란이 오는데 환란이 오는데 어찌됩니까? 이 지금 풍랑을 광풍을 만난 것은 주님에게 순종하는 걸음을 걷다가 만난 것입니까, 거역하는 걸음을 걷다가 만난 풍랑입니까? 예. 순종하는 순종에서 만난 광풍이지요.
우리가 죄를 지어 가지고 이런 일이 있을 때도 이런 도리를 쓰면 안 됩니다. 그때는 죄를 지어 가지고 자기에게 이런 광풍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때에 주님이 계시니까 두려워하지 않고 그때는 두려워하지 않고 안심하고 안심하고 이래 있어야 됩니까? 그때는 어째야 됩니까? 두려워하면서 퍼득 회개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빨리 회개해야 됩니다.
빨리 회개해 가지고 어떻게 회개 할 수가 있는가? 죄는 어떻게 하고 대형의 사죄에 당장 맡깁니다. 또 내가 불의한 것을 대행의 칭의에 당장 맡기고 내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대했는데 어쩌고 예수님이 대신 회목의 제물이 되신 이 화평을 믿고 이래 가지고 사죄 칭의 새생명을 그때 딱 그만 얼른 힘입어 가지고 힘입어서 이 문제를 다 해결하고 ‘주여 이제 믿사옵나이다’하면서 딱 달라들어 가지고 그때 부텀 진리에 입각해 가지고 나아가면 된다 이기요.
그런데 요 풍랑은 예수님이 바다 건너로 가자하고 주님하고 같이 가는 이 걸음에서 만난 풍랑입니다. 그런 풍랑에서는 우리는 무서워하지 안해야 되고 죄지어서 만난 풍랑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회개만 하면 되는가? 어떻게 하고 예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무서워 무서워 회개하고 주님을 바라봄으로 하루 일흔일곱 번씩이라도 돌이키면 용서하라 하는 주님을 바라봄으로 그때 자 제일 처음에 범죄함으로서 풍랑만나면 제일 처음에 뭐해야 됩니까? 뭘 해야 되요? 응 두려워해야 되고, 둘째는 회개해야 되고, 셋째는 셋째로는 응 셋째로는 믿음 가져야 되고 믿음은 뭐이요? 주님을 바로 깨닫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 아닙니까? 믿음 가져야 되고 그라면 넷째는 뭐 되지요. 평안하지요. 녜 평안하고 승리 밖에는 없지요.
5. 평소에 말씀으로 무장하여 환난 때 승리하라
그런고로 요런 말씀을 단단히 기억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이 평소에 필요한 그 같은 그런 교훈은 잘못된 교훈들입니다. 그저 이 세상살이에 좋은 그것은 참 그 교훈이 젓먹는 교훈이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그 교훈이 삐뚤어진 인본의 교훈이든지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잘 배우면 어려움이 올수록 이 말씀은 우리에게 권능 있게 구출합니다.
그 대구에서 금요일마다 내려오는 그 뚱뚱한 김만술 집사님, 예수님 때문에 아카시 꽃을 세가마 먹었다는 사람입니다. 참 곤고하게 지냈습니다. 그분이 공연히 억울하게 인민군들 인민군하고 한 덩어리라고 이래 가지고서 그 감옥에 가 갇혔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에 이 그때에 설교 말씀 들은 것이 자꾸 깨달아져서 설교 말씀을 들어서 설교 말씀을 사귀니까 어떻게 기쁘고 즐거운지.
그때에 그분이 이 설교의 말씀이 참 자기를 구원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 이런 말씀을 단단히 기억해 가지고 앞으로 풍랑이 일 때에 이 말씀을 써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안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2013년 12월 6일, 04, A+, 222. Bongwon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