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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목사님 설교집

농부의 사랑과 기대

윤봉원 2013.08.24 20:51 조회 수 : 723

83-05-15 주전요 15:1-14날자: 1983년 5월 15일 주일오전
제목: 농부의 사랑과 기대
본문: 요한복음 15장 1절∼14절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 예수님의 실상
"내가 참 포도나무요" 하는 이 나는 도성인신해서 신인양성일위로 중보 되어 있는, 신인양성일위로 하나님과 택자들 사이에 중보가 되어 계시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고 내라고 말씀했고,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그 아버지라고 말한 것은 이는 인성과 그 연관성이 없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가리켜서 아버지라 그렇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여게 아버지는 영원 자존자시요, 창조주시요, 주권자 시요, 주재자이신 이 하나님을 가리켜서 아버지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인성을 입었기 때문에 신성만이 아니고 인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아들의 지위의 그 직책에 있고 예수님의 신성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내나 아버지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9장에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영존하신 아버지라' 그렇게 표시를 했습니다.
2. 농부인 하나님 아버지는
2.1. 모든 나무가 잘되도록 전부를 다 기울이신다.
2.1.1.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백성이 잘 되도록 하신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여게서 몇 가지만 증거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 신인양성일위를 가지시고 하나님과 우리 택자들 사이에 중보자가 되셔 가지고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요 우리는 예수님의 몸인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요 우리는 예수님의 몸인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하신 것은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 교회의 근본 근거가 되시는 것을 말하고 교회는 다 예수님에게 속한 자로서 예수님의 구속을 입은 자는 예수님과 나눌 수가 없고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께서는 이 포도원의 농부, 이 포도나무에 대해서 농부의 위치를 가지고 일을 하십니다.
그러면 여기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고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시고 보존하시고 계시는, 만물에 대해서와 우리 인류에 대해서 기독자에게 대해서 하나님 노릇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아버지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버지는 농부라, 그러면 하나님은 포도나무를 위해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여게 말씀했는데 이것은 비유기 때문에 포도원에는 포도나무가 한주 두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수십 주 뭐 수백 주 수천 주도 있을 수 있는데 이는 비유기 때문에 비유로써 다른 여러 가지 면을 가르치기 위해서 주님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는 포도나무는 한 나무뿐이오. 포도나무는 예수님 혼자뿐입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라고 비유한 것은 모든 택자들은 다 예수님에게 속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그 은혜를 받아서 살기도 하고, 또 성장도 존귀도 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둥치에서 얻지 아니한 것은 그 전부가 포도나무 가지에 해가 되는 것뿐입니다. 포도나무 그 둥치에서 얻은 것이라야 그것이 가지도 자라고 잎도 꽃도 열매도 되지 포도나무 둥치에서 얻은 것이 아니고 다른 데서 와서 붙어 있는 것, 다른 데서 와서 포도나무 가지에 보태진 것, 더해진 것은 전부 포도나무에는 해독이지 유익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농부는 순전히 이 포도나무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고 하니 이 농부의 가진 그 자원을 애낌 없이 이 포도나무를 위해서 다 기울입니다. 이 농부는 포도나무가 뭐 여러 수십 주 있으면 이 포도나무도 소망을 두고 가꾸고 저 포도나무도 소망을 두고 가꾸지만 이는 비유인데 포도나무가 단지 한 주뿐이오. 한 주뿐인데 이 한 주 에다가 이 농부는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농부의 모든 소유를 이 포도나무에 다 기울입니다. 다 기울여서 이 포도나무가 잘 되도록 하려고 있는 소유를 다 기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뭐 영계도 있고 이 우주에도 별별 것이 다 있고 이 지구와 같은 별별 항성 위성 유성 사람들이 말 꾸민 대로 말하면 수없는 지구 땅덩어리와 같은 그런 물체들이 이 우주 가운데는 수없이 있고 또 거게는 모든 자연 역사의 비도 있고, 바람도 있고, 또 나라도 있고, 전쟁도 있고, 평화도 있고, 질병도 있고, 또 치료하는 무슨 병원도 있고, 이제 이 우주와 우주에 가득 찬 것 또 영계와 영계에 가득 찬 것 이 모든 이 전부는 다 이 농부의 소유입니다. 이 포도나무의 농부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 전부는 다 하나님의 소유인데 이 농부가 이 포도나무를 위해서 있는 소유를 아낌없이 다 기울입니다. 당신이 가지신 것을 이 포도 나무가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다 기울이십니다.
2.1.2.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는 사람에게 전부를 기울여 역사하신다.
그러면 이 포도나무는 뭐인고 하니 예수님은 둥치요 성도들은 가지인데 예수님은 머리요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에 속한 몸이라, 그런 것은 다 비유인데 그것도 하나의 관계되어 있는 현실을 하나의 비유로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그렇게 발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있는 소유를 다 포도나무를 위해서 다 투자하신다. 내가 포도나무에 떨어지지 않고 포도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는 가지가 되면 농부인 하나님은 있는 소유 전부를 나를 위해서, 예수님에게 속한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 있는 나를 위해서 전부 다 투자 하신다, 요걸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걸 믿으면 마귀 시험이 다 달아나고, 이것을 믿으면 어리석은 것이 다 달아나고 슬기롭게 됩니다.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는 이 사실인데 사람들이 너무도 큰 일이 돼 놓으니까 믿지를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그러합니다.
나아만 대장이 그렇게 전국, 그저 의학과 재물을 다 들여도 낫우지 못하는 그 병을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만 씻고 와라' 이러니까 이 말이 너무 쉬워서 물에 넣어도 붓지 안할 말로 무시했다 그거요. '그러나 가서 씻어나 보고 하지요.' 씻으니까 낫더라 그거요.
애굽 나라에 장자 재앙으로 그렇게 전멸되는 그것을 왕이고 누구고 어떤 세력으로써도 막지 못하는데 양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방문 닫고 앉았으면 아무 일 없다 했는데 그렇게 한 사람은 다 됐다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포도나무 둥치에서 떨어지지만 아니하면 하나님의 모든 소유는 그 사람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전부는 다 하나님이 투자하신다. 이것이 뭐 참 믿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믿어집니다. 그 동리에 유력한 사람만 나를 위한다 해도 참 그런 행복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고, 일국에 제일 부강한 세력가가 나를 위한다고 하면 그 소유를 다 나를 기울여 준다면 그는 참 영광이요 감사한 일인데 그런 일도 역사에 되는 일이 없는데 자존하신 이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 이분이 있는 소유가 천상 천하에 있는 것이 다 그분의 것인데 이것을 예수님에게 떨어지지만 않고 예수님을 믿는 그 택한 자라면 그자를 위해서 전부를 다 투자하신다, 다 기울이신다 하는 것을 믿으면 이대로 됩니다. 믿으면 되는데 안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성경 가운데 기록해 놓은 모든 역사는 인간 생각으로는 도무지 될 수 없는 일이지만 된다 하실 때에 '예, 그렇습니까?' 하고 믿은 사람들은 다 성공을 했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을 제일 첫째 대접이 그것입니다. 인간 자기의 의사에는 뭐 아주 말 같지 않은 말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이렇다 하시면 '예, 그렇습니까?' 하고 그대로 의심 없이 확신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 대접이라 말이오. 하나님이 뭐 돈을 드려서, 요리를 드려서, 좋은 의복을 해다 드려서, 뭘 일을 많이 해서, 그까짓 거 하나님이 바라지 않습니다. 엿새 동안에 우주를 지은 그 능력 가지신 분이 인간들이 찌절찌절 하면서 찌적거리면서 그뭐 하나님을 돕는다 해 봤자 그까짓 게 무슨 양이 되겠습니까? 그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인정하고 믿어드리는 것, 믿는 것, 그대로 그 사실을 그대로 '그렇다' 하는 것을 확신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대접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인데 내가 포도나무 가지는 되어 있는데, 택한 자요 중생됐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속한 가지는 됐는데, 예수님의 지체는 됐는데 내가 거게서 떨어지지만 안하면 나는 어떤 입장과 소속과 처지를 가졌느냐? 이 하나님이 모든 소유를 나를 위해서 투자하실 수 있는 그런 위치, 그런 입장, 그런 소속을 가진 내다 하는 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이 농부가 뭣을 하는고 하니 이 농부의 실력을 다 이 포도나무를 가꾸는 데에 기울입니다. 그거는 뭐 성경에 기록돼 있으나 없으나 농사만 보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농부는 자기의 소유를 한 푼 들여 가지고 두 푼 얻고, 천 원 들여 가지고 한 십 배나, 이십 배나, 백 배나 수익을 보기 위해서 있는 걸 다 기울이는 것이 정한 이치 아닙니까, 그거? 그거는 일반 자연계시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말이오. 또 그 농장 하나를 소망하고 있다면 그 농부는 자기의 지능은 거기다 다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밤으로도 어떻게 해야 될까 해서 연구할 것이고 또 낮으로도 있는 시간과 힘을 기울여서 포도가 잘리도록 그렇게 할 것이고,
그러니까 이 농부, 포도원 농부 이 하나님 아버지의 지혜와 능력 모든 지능은 이 포도나무와 가지를 위해서 다 기울이신다 하는 이것을 또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지능의 그 모든 지능은 나를 위해서 기울여 주시고 나를 위해서 역사하시는 이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안 믿으면 안 돼. 안 믿으면 끊어지고 믿으면 된다 그거요. 또 하나 남은 것은 이 농부가 그러면 그것 다 투자하고 소유 다 투자하고 있는 기능 다 기울여서 무슨 일 하는가? 그 일은 포도나무 열매 잘 맺도록 가꾸는 일 한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소유 전부, 기능 전부, 다 해 가지고서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되어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나를 위해서 다 기울여서 역사하신다 하는 요것을 의심없이 꽉 믿고 잡아야 됩니다. 믿는 데서 능력이 나오지 믿지 안하면 능력이 안 나오요. 믿는 데서 능력이 나옵니다. 믿으면 웃으면서 행할 수 있고 행하면 그 사실이 실행되고 실상 되고 만다 말이오. 소망이 실상 되는 방법은 소망하고 의심 없이 믿으면서 행하니까 그만 소망한 것이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말씀했습니다. 요것을 믿어야 돼요. 안 믿으면 소용 없습니다. 안 믿으면, 아무리 큰 폭탄이라 해도 그 폭탄에 구멍 나 버리면 그만 무능합니다. 폭발력은 하나도 없어요.
요새 또 원자탄은 뭐인지? 원자탄은 아마 그보다 더 한 이치가 있을 거라. 뭣인가 거게 하나 잘못되면 그만 헛일되는 그게 있을 거라. 그러면 원자에 대한 거는 아주 상식이 없기 때문에 원자에 대해 이런 말을 할 수 없으나 폭탄은 제가 많이 봤어요. 그거 그만 요 앞에 요거 폭발되는 거기다가 나사를 빼 가지고서 구멍을 빼서 공기가 나가도록 하면 그거 매면 피이 거리는데 그리고 난 다음에는 아무리 메로도 때리면 그저 후루루루루 하면서 그만 불만 타버리지 그뭐 이런 집 몇 채를 날릴 그 폭탄이라도 아무 힘없습니다. 이러니까 의심 없이 믿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옵니다.
내가 예수 믿는 노릇만 바로 하면 이 삼위일체이신 자존자 창조주 주재자 주권자 이분의 모든 창조하신 소유는 나를 위해서 다 투자하신다. 그의 지혜와 능력은 나를 위해서 다 기울이신다. 그러면 기울여 가지고 무슨 일 하는가? 포도나무가 잘돼서 열매 맺도록 하는 그 일 하신다. 그러면 나로 하여금 열매 잘 맺도록 하기 위해서 그 일 하신다 하는 것을 의심 없이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농부라,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인데 농부된 아버지가 나에게 이 세 가지를 다 기울여서 역사하신다. 두 가지를 기울여 가지고서 나를 위해서 역사하신다 하는 요 세 가지를 의심 없이 믿으면 능력이 나옵니다. 이를 믿는 것이 허무한 것 같지만 믿으면, 이를 믿으면 세상에 두려워할 것도 없고, 부러워할 것도 없고, 큰 것도 없고 나 위하지 안하는 것도 없고, 내것 아닌 것도 없고 전부라. 공연한 위안제를 마시는 게 아니라 믿으면 그대로 됩니다.
2.2. 열매 맺는 자에게 전부를 다 기울이신다.
둘째는 그러면 이 포도원 농부가 무엇을 바라고 이렇게 자기의 소유 전부를 다 투자하며, 기능을 다 기울이며, 이 포도나무 가꾸는 일에만 다 하시는가? 뭣 바라고 하시는가? 그걸 여기 말했습니다. 무엇을 바라고 하느냐 하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다 찍어버린다' 하는 것을 먼저 말했습니다. '과실 맺지 않은 가지는 다 찍어버린다.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많이 맺도록 가꾼다.' 구역에는 '가꾸신다' 이랬는데 개역에는 '깨끗게 하신다' 그렇게 했습니다. 깨끗게 하신다 말이나 가꾼다는 말이나 좀, 가꾼다는 그것과 같은 말인데 깨끗게 하신다는 것이 깊어서 알기만 좀 어려운 것뿐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소유 전부 기능 전부 다해서, 작게 말하면 나를 위해서, 좀 크게 말하면 내 가정을 위해서, 좀 크게 말하면 내 교회를 위해서, 좀 크게 말하면 모든 기독 교회를 위해서, 역사에 있는 모든 교회를 위해서 다 기울이신다. 그러기에 모든 교회는 곧 큰 내요 나는 작은 내라. 나는 소아(小我)요 모든 것은 나의 대아(大我)라. 이런데 내가 하나님의 그 전력의 기울이심과 전소유를 기울여 나 위해서 역사하시도록 하려고 하면 그 방편은 뭣이냐? 내가 열매 맺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것만 하면 다 기울이십니다.
여기 본문에 해 놓기를 "과실을 맺지 안하는 가지는 다 찍어버린다" 했어. 그러면 이 하나님에게 찍혀 버리워서, 버리면 나중에는 사람들이 주워다 불에 사른다 했어. 그러면 소멸되는 것, 이 하나님에게 버림받아 가지고서 결국은 그게 소멸되거나 멸망되거나 뭐 불에 타거나 어쩌거나 망하는 것.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버림당함으로써 멸망 받는 것이고 하나님에게 이런 지극히 큰 은총의 구원을 입는 것은 다른 방편은 없고 열매 맺는 것이라. 우리는 이 사는 법칙을 바로 알아야 되지 법칙을 바로 모르면 저만 골빠지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만 골빠졌지 아무 소용이 없어. 사람들이, 자기가 아무리 자기를 행복되게 하려고 해도 인간이 돕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인간이 암만 도와도 자연이 안 도우면 소용이 없습니다. 자연이 암만 도와도 하나님이 안 도우면 다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의 그 능력을 가지고 나를 돕도록 하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이 뭐이냐? 내가 열매 맺는 것이라. 하나님의 그 모든 소유 뭐 서로 앞집 뒷집이 시비해 가지고 뭣을 하나라도 더 뺏들라고 뭣 좀 넓힐라고 이렇게 그 째째하게 그렇게 못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나 위해서 기울이게 할 수 있는 그 길이 우리에게 있다 그말이오. 그 길이 뭐이냐? 열매 맺는 것.
또 하나님이 그런 소유와 기능을 가지고서 쉬지 않고 열심히 그 일만 보고서 그것만 보고서 연구하고 노력하고 위하고 이렇게 전소유와 전능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나만 위해서 역사하시도록, 나만 위해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길이 있어. 그게 뭐이냐? 열매 맺는 것. 이러면 이보다 더 부자가 어데 있으며 더 큰 자가 어데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이 말씀은 털끝만치도 가감이 없는 말씀인데 사람들이 안 믿으니까 능력이 안 나옵니다 믿지 않으니까 능력이 안 나와 못나도 믿으면 그 믿음을 통해서는 큰 능력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전소유 전기능 다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우리 전부 다가 아니면 자기 개인이라도 내 개인을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소유 모든 기능 전부를 기울여서 나 개인을 위해서 이렇게 역사하시도록 하는 방편이 뭐이냐? 그것은 열매 맺는 것, 하나님에게 버림받는 것이 뭐이냐? 열매 맺지 않는 것. 이는 변동이 없습니다. 가감이 없어. 가감도 변동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열매 맺으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소유를 다 차지하고 열매 안 맺으면 하나님에게 버림당해 버립니다. 버림당하면 마지막에는 불에 사른다 이랬어. 마지막에는 멸망밖에는 없어요.
2.2.1. 열매는 계명 지켜 이룬 자타의 구원이다.
그러면 그 열매는 무엇이냐? 그 열매는 그 밑에 해석을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였으니' 하는 그것이 뭐냐 하면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대해서 이렇게 하셨다 그말이오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대해서 이렇게 하셨는데 뭐 하셨느냐?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셨는데 내가 그 사랑 안에 있는 것, 아버지가 모든 소유와 모든 기능과 전부를 다 기울여 가지고서 나를 위해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내가 받는 데는, 그게 나를 사랑하시는 것인데, 내가 그것을 받는 것이 그 사랑 안에 있는 것인데, 그것을 받는 것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것을 다 받았다. 그 사랑 안에 내가 영원히 거한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8장에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있는 모든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으니' 그말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소유 전부를 간추려서 권세 아닙니까? 그걸 다 내게 주셨으니 내가 이것을 받아서 있으니까 너희들은 모든 족속으로 하여금 제자를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나는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대해서 세 가지 역사하시는 것, 모든 소유 다하고 기능 다해서 역사 다해서 예수님 위해서 하시는 그것이 한 말로 말하면 예수님 사랑하시는 것인데 그 사랑을 솔빡 다 받는 방법이 무엇이냐? 아버지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 사랑 안에 있게 됐다. 아버지의 계명이라 말은 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순종하는 그것 하나 가지고 그 사랑 안에 거하게 됐다.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켜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 명령을 지켜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너희들을 이렇게 저렇게 할 때에 내게 피동 되는 그 피동 역사, 내게 순종하는 역사, 내 모든 것을 내가 발표한 것을 인정함으로써 나와 내 역사를 인정하고 확신하고 내가 하나하나 너희에게 명하는 그것을 네가 그대로 순종함으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전 소유 전 능력 다해서 나 위해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솔빡 다 차지했다. 차지한 것은 그 계명을 지킴으로 차지했다. 이제 아버지가 모든 것 가지고서 내게 대해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이제는 내가 그 모든 것을 내가 받아 가지고 내 모두 다 그것을 가지고서 아버지가 내게 하듯이 나도 아버지와 같은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아버지의 것을 다 내가 받아서 그 모든 걸 가지고 내가 아버지가 내게 하듯이 내가 너에게 하니 너도 내가 아버지에게 대해서 하듯이 너도 내게 대해서 하면 너희가 내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다음에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으로 충만케 하기 위함이다 왜 이 말씀을 했느냐 하면 주님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죽은 인간들의 마귀 지식으로 보면 전부 예수님은 망하는 길이라 그말이오, 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니까 망하는 길 아닙니까? 망하는 길인데, 망하는 길이니까 베드로도 보고서 '아이구, 주님 그런 일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렇게 말한 것처럼 예수님이 아버지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인간의 마귀 지식으로 생각해 보면 이는 순전히 망하는 것이요 다 절단나는 것이기 때문에 다 슬픔과 고통과 외로움과 참 기막히는 일인데, 껍데기가 그렇다 그거요. 껍데기가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내 계명 지키는 것도 껍데기가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 합니다. 껍데기가 너희들이 그렇게 고독해지고 다 참 무능해지고 절단나지고 가난해지고 다 비참해지는 것으로 보여지니까 너희들에게 말하는 내 계명 지키는 것이 한없는 슬픔이요 다 비관으로 보여지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이렇게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내 기쁨이' 세상이 해하지 못하는 기쁨, 시간과 공간이 해하지 못하는 기쁨, 모든 존재가 해하지 못하는 기쁨, 영원한 기쁨. 참된 기쁨, 이 기쁨으로 내가 십자가상에서도 기뻐 못 견디는 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들도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전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 계명 지키는 것이 껍데기로 볼 때는 슬프나 속에는 보면 기쁘고, 껍데기 보면 손해 가는 것 같으나 속에는 유익되고, 껍데기 보면 죽는 것 같으나 속에는 영생하고, 껍데기를 보면 지는 것 같으나 속에는 참 승리하고, 껍데기를 보면 다 속는 것이고 다 절단나는 것 같지만 속은 영원 완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껍데기만 보고 네가 그래 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참 영원히 기쁘고 온전한 그 기쁨과 생명을 주기 위해서 내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해 놓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 계명은' 했습니다.
그러면 이 계명 해석을 해야 알 터이니까 '내 계명은' 그러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말씀하시고 내 계명은 어떤 것이 내 계명이냐?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 내 계명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면 그것이 계명 지키는 것이라. 주님이 아버지 계명 지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역사 그것이 전부 아버지 계명 지키는 것이다. 아버지는 예수님에게 대해서 다른 것을 시키지 안했습니다. 다른 것을 시키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만 시켰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전공이오.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만 시켰다 그거요. 아버지가 나에게 명령한 그 명령은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그것만 명령하셨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그를 위해서 내가 있는 것을 다 투자해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됐다,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그것이 내 계명 지키는 것이라.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사랑했다 하는 것은 요한일서에 말씀하신 대로 당신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지 모든 하늘의 부요를 다 내어놓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에는 당신이 낮아지는 것도, 천해지는 것도, 모든 손해 지는 것도, 뭐 가난해지는 것도, 마지막에 억울한 것도, 또 모든 애매한 것도, 정죄 받는 것도, 매 맞는 것도, 십자가 못박혀 죽는 것도 상관없이 우리 구원하는 일만 아버지가 시켰고, 우리 구원하는 일에 너는 지금 십자가에 달려야 된다 하니까 '예' '너는 지금 못박혀야 된다' '예.' '너는 머리 둘 곳도 없어야 된다.' '예.' '너는 창조주가 너는 인간 돼야 된다' '예.' '낮아져야 된다' '예.' '지옥까지 떨어져야 된다. '예.' 예 뿐이라 말이오. 이렇게 하는 그것이 뭐냐? 순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만 명령했는데 그 명령에 대해서 하나도 거역하지 않고 그 명령을 다 감당함으로 이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점령했고 아버지에게 만족을 줬고 모든 피조물의 중보가 됐다.
이와 같이 나도 너희들에게 명령하는 명령이 딴 명령 없다. 아버지가 내게 명령하신 것과 같은 그 명령과 같은 그 명령 한다, 아버지가 나에게 명령한 그 명령은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그 명령했는데 나도 너희들에게 명령하는 명령은 딴 명령 아니고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서로 사랑하는 것은 너는 저를 사랑하고 저는 너를 사랑하고 서로 상호 사랑이라. 상호 사랑이라 그 말은 사랑은 뭘 가리키는가? 사랑은 곧 구원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사랑은 구원을.
구원이 뭐인데? 죄에서 벗어나는 사죄의 역사, 또 칭의의 역사, 화친의 역사 이것을 이 공로를 설정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다 투자했고, 또 사람으로 부활하신 것은 이 설정해 놓은 구원을 우리 각자들에게 입혀서 우리가 실상 그 공로의 구원을 입어서 우리가 사죄를 벗지 않고 사죄를 입은 자로, 또 칭의를 입은 자로, 화친을 입은 자로 이렇게 우리가 되어지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데에는 내가 너희들에게 이 공로를 입히기 위해서 이렇게 된 것처럼 너희들도 이 계명 곧 이 구원의 공로를 입히려고 하면 너희들도 이런 것 이런 것 이런 순서와, 이런 애로와, 이런 모든 투자와 이런 희생이 입어야 되니 이것을 하면서 하는 것이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어데까지 지킬 것이냐?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이 구원을 위해서 마지막에 생명까지 다 기울이면 이 사랑 이 구원 역사보다 더 큰 역사가 없느니라' 그렇게 주님이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곧 예수님의 대속인데 우리가 어떤 현실을 만날지라도 죄와 상관이 없는 자기로, 사죄를 입혔으니까 다시 죄를 입지 안하는 것으로, 사죄 죄 없는 자로, 죄 없는 사죄를 입혀 주셨으니까 사죄 입혀 주신 것을 벗고 유죄를 입는 그런 일을 하지 말고 죄 없는 그 입혀 주신 공로를 벗지 않고 그대로 입고 있는 것, 또 주님이 나에게 칭의를 입혀 주셨는데 칭의는 어떤 게 칭의냐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진 그게 칭의니까 나를 예수님이 대속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해서 하나님은 원동력이 되고 나는 거게 소속이 되어서 하나님의 그 원동에 거게 따라서 내가 피동하는 것이 그것이 의를 벗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과 이렇게 절연돼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을 시켜서 하나님에게 우리가 복종하고 순종해서 하나님에게 피동될 수 있는, 피동될 수 있는 피동할 수 있는 피동의 이 연관성을 딱 맺어놨다 말이오. 맺어 놨으니까 하나님에게 피동한 피동을 버리지 말고 이 피동을 계속하는 것이 칭의를 벗어버리지 않는 것이라 말이오.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이 화친을 이것을 배반치 안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동행을 벗지 않는 것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하고 언제든지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만을 높이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만 사모하고, 이제 그와 나 사이가 끊어지지 않는 이것이 화친으로 원수된 것을 선악과 하나 딱 먹음으로써 딱 끊어져 버렸는데 이제 하나님과 우리와의 끊어지지 안할 수 있는 이 대화친의 공로를 베풀어서 요렇게 화친케 해 줬으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끊치지 안하도록 언제든지 하나님과 나와 관계가 끊치지 않고 같이 동거 동행하는 요것이 뭐냐? 구원을 입는 것입니다. 요 세 가지를 입고 있는 것이 이것이 뭐냐? 이것이 그 사랑을 입고 사랑 안에 있는 것이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도, 계명을 지키는 것도 곧 이 세 가지를 내가 입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또 이 세 가지를 내가 입고 다른 사람에게 입을 수 있도록 전해서 다른 사람도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계명 지키는 것이라. 그것이 사랑이요, 그것이 계명이요, 그것이 구원이라.
그러면 이 사랑 안에 거하게 되고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되어진다. 그러면 어찌 되느냐? 하나님의 전소유와 전기능과 전역사를 전부 다 해서 내게 나를 위해서 기울이게 하는 이 관계에서 살게 된다. 마태복음 28장에도 그 말씀입니다.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으니 이제는 너희들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모든 사람으로 제자를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하는 그 말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히고 '내가 너희들에게 명하는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세상 끝날까지 같이 있겠다' 하는 이 말씀이 뭣 가지고?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가지고서 같이 있겠다. 그 말씀이나 열매 맺는 자에게는 농부가 있는 것을 다 그를 위해서 기울인다, 더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기울인다 하는 말씀이나 꼭 같은 말씀입니다. 성경에 이런 각도로 사람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말씀했고 저런 각도로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이 마지막에 보면 다 그 진리는 하나라 그거요.
3. 완전 멸망길과 완전 실패의 길은 열매를 맺고 안 맺고에 달렸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 오전에 요것을 기억합시다. 하나님, '하나님' 하면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데, 그래서 후란시스가 자기 제자들하고 이래 지내다가 한 번은 석 달 동안 산기도를 가자 해서서 가서 '나는 하루 한 끼씩만 밥을 먹을 터이니가 한 끼씩만 내 식사를 해 달라.' 하는데 그 제자들이 따라다니기는 따라다니지만 후란시스가 뭘 하고 있는지 무슨 기도 하는지 몰라서 가서 엿들었다 그말이오. 모르게 살며시 가 가지고서 엿들으니까 오늘도 엿듣고 한 달 내 엿듣고, 두 달 내 엿듣고 석 달을 내내 계속해 엿들어도 하는 기도가 그거라. 이러면서 '하나님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이래 놓고 한참 자기가 명상하다가 울고 감탄해서, 그분은 거게서 겸손을 배웠어. 또 '무엇을 아버지는 하십니까?' 인제 그것이 하나님에게 대한 연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피조물을 바로 압니다. 하나님을 알면 피조물은 피조물로서 요만한 가치, 요만한 위치, 요만한 귀중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의 비교를 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탁월한 존재이며 어떤 분이신 것인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겸손할 수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담대할 수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지혜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알아야 뭐, 하나님이 있는 소유를 다 기울인다. 누가 빌딩 집 한채를 팔아 가지고서 기울여 준다 하면 '아이구 그렇게 많은 재물을' 말하지, 하나님이 있는 소유를 다 기울인다 하는 그거는 너무 우리의 지식을 초월했기 때문에 그 말이 인정되지 않는다 말이오. 자기라는 사람이 되는 것만치 인정이 됩니다. 모든 소유를, 모든 그 능력을 다 기울여서 나를 위해서 역사하게 하는 그 유일한 길이 뭐이냐? 그것은 열매 맺는 것이라. 그러면 내가 절대자이신 하나님에게 끊겨지는, 끊쳐지는 비결이 무엇이냐? 거게서 절단돼서 거기서 끊겨나가서 멸망 받는,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서 멸망 받는 그 멸망 받는 길이 무엇이냐? 멸망 받는 길은 열매 맺지 않는 길 또 그 전부를 다 기울여서 나를 위해 역사하시도록 하는 길은 뭐이냐? 열매 맺는 것. 이러니까 하나님이 이 세 가지 가지고서 역사하는 것 우리가 명심하고 확신해야 되겠습니다.
이걸 뭐 한 시간 이 시간에 들어서 믿어지는 것 아닙니다. 자기가 밤이고 낮이고 '하나님이 있는 소유를 다 기울인다, 하나님의 소유가 뭐 천 원어치가, 십만 원어치가, 백만 원어치가? 어떤 것이고?' 하나님을 자꾸 성경을 가지고 자기가, 성경은 정확무오한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찾아보면 하나님의 것 아닌 것이 없어. 인간들도 다 하나님의 것이라. 거게서 '전인류는, 내가 열매만 맺으면 전인류는 나 위한 모든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로구나. 전국가 세계의 문화나 뭐 전부는 하나님의 소유인데 이것은 내가 열매만 맺으면 그 전부는 다 나 위하는 것이 되는구나.' 하는 이것이 거게서 자꾸 발견이 돼 나온다 말이오. 또 하나님의 능력도 열매 맺는 자를 위해서 다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뭐 합니까? 비오고, 전쟁 나고, 바람 불고, 날 좋고, 흉년들고, 풍년드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시는 것인데 하나님의 그 무한한 기능을 가지고서 역사하는 그 모든 역사가 그 역사가 열매 맺는 나를 위해서 역사해.
그런고로 그분의 기능 전부도, 소유 전부도, 역사 전부도 나 위해서 하는 것이 이것이 내가 열매 맺는 요 하나로써 된다. 또 내가, 하나님께 지음받은 내가 하나님께 버림받아서 결과적으로는, 멸망받는 거는 뭐이냐? 열매 맺지 않는 것이라. 요게서 결정을 지우고, 그러면 다시 소지로 들어가서, 그러면 열매는 뭣이 열매인가? 열매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이다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곧 우리의 구원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뭐인데? 우리를 죄에서 끊어져서 다시는 죄와 상관 없는 자 만든 그것이 사랑하시는 사랑이요,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그 피동되도록 그것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과 언제든지 이질적이 아니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하나님과 항상 떨어지지 않는 요 관계를 가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그게 뭐이냐? 그게 구원이라. 그게 뭐이냐? 영생이요, 완전이요, 불변이요 영원한 생명과 평강이라 그겁니다. 그러면 그것을 그것 다하는 법을 가리켜서 뭐이냐? 하나님의 계명이라 했다. 그러면 그것을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표본이 뭐이냐? 누구를 본받고 무엇을 표본해서 해야 되느냐? 나를 표본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라' 그것이 표본이다.
그러면 주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데? 주님이 사랑하신 건 첫째로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하나님으로 그 지위와 권세와 영광과 존귀와 부요 그 모든 것을 나를 이 세 가지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다 희생했고 나 위해서 어데까지든지 낮아졌고, 어데까지든지 참고 견뎠고 어떤 고난이라도 당했고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다 하셔 가지고서 결국은 당신의 전부를 다 기울여 가지고서 나에게 사죄 칭의 화친의 새생명 이 세 가지의 완성을 하시고, 그리고 난 다음에도 이 완성한 것을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나눠 줘 가지고서 각자 개적으로 가지도록 하시기 위해서 다시 사람으로 부활하셔 가지고 지금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는 것이라. 예를 들면 공산주의자가 무신론자가 우리에게 와서서 서로 대결했을 때에 우리가 그 앞에서 내가 죽임을 당할 때에 그들에게 대해서 이런 것 저런 것 다른 방편으로서는 그들을 대항하는 법도 용납지 안했고, 대항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이 절단나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으면 박혀졌지 그 대항해서 뭐 죽이거나 그렇게, 전능의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을 쓰지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거게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능력을 내가 힘입는 것이나, 하나님의 전소유를 나를 위해서 활용하게 하시는 것이나, 하나님의 전활동을 나를 위해서 하도록 하는 그 방편은 뭐냐 하면 거게서 내가 열매 맺는 것이니, 열매 맺는 것이 뭐냐? 아버지의 계명 지키는 것이니 아버지의 계명 지키는 것이 뭐냐? 구원 성취하는 것이니, 구원 성취가 뭐이냐? 거게서 내 자신이 사죄를 칭의를 화친을 벗지 않고 그 사람에게 사죄를 입혀 주고, 칭의를 입혀 주고, 하나님과 화친을 듣든지 안 듣든지 그에게 말로 전하고, 또 내가 이 세 가지를 목숨을 내줬으면 내줬지 이 세 가지를 내 주지 안한다는 것, 그에게 이 세 가지의 가치를 알게 하고 또 이 세 가지를 말로 전해 주고, 문서로 전해 주고, 어떻게 전해 줘 가지고 그들에게 이 복음 운동하는 거게만 하나님의 이 무한한 능력도 솔빡 입을 수 있고, 그 역사도 입을 수 있고, 그 소유도 입을 수있는 이것이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이 유일로 정해 놓으신 법칙이요 비결이라. 그런고로 오늘 오전에는 요것을 명심합시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 하는 그것도 알려고 하면 시간이 많이 걸려 안 되니까, 하나님 우리가 많이 배웠으니까. 하나님이 모든 소유를 다 가지시고 모든 능력을 다 가지시고 나를 위해서 역사하게 하시는 비결, 그 모든 걸 다 가지시고 우리 교회를 위해서 역사하게 하시는 비결, 그 모든 것을 다 가지시고 우리 가정을 위해서 역사하시게 하는 비결, 무엇이든지 그 역사는 어데 가느냐 하면 열매 맺는데 간다 그말이오. 어데 가느냐? 열매 맺는데 간다. 열매가 무슨 열매냐? 열매 그거는 구원이라. 구원은 뭐냐? 구원은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구원이요, 또 모든 실행으로 보이는 것도 구원이요, 이런데 그 모든 것은 구원을 전달하는 방편이요 실상 구원은 어떤 게 구원이냐? 내게 있는 구원이나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나 구원은 사죄가 이루어지고, 칭의가 이루어지고, 화친이 이루어진 그것이 구원이라.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 구원이라. 그거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게는 하나님의 전소유와 전능력이 다 그것 위해서 기울이게 된다. 요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이것 위해서 우주를 만들어 놓고 모두 섭리합니다. 사람들은 보기에 이걸 사소하게 보지만 이것 위해서 다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이 구원을 손해보일까 해서 범죄하지 안하려고, 목숨을 빼앗겨도 범죄하지 안하려고, 목숨을 빼앗겨도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피동을 어기지 않고 절단내지 안하려고, 이 자기의 어떤 생명이나 어려움이 다, 절단이 나져도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이렇게 결합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것을 하지 안하려고 요렇게 이 세 가지를 내 자신이 안 하려는 것이 곧 나를 구원함이요,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이 구원을 보여 주는 것이요, 보여 주고, 말로 전하고, '왜 이 사람아 그래 죽을 짓 하나? 말 한 마디만 하면 살 터인데.' 그때에 이 세 가지 구원을 사죄 칭의 화친의 새생명을 그들에게 알려 줘서 듣든지 안 듣든지, 불택자면 안 듣습니다.
안 듣든지 듣든지 할 것 없이 나는 구원 얻었기 때문에 내 구원을 내어 주지 않고 이 구원을 보존하고 이 구원을 형제에게 주기 위해서 역사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는 계명 지키는 것이요, 이것이 사랑이요, 이것이 열매 맺는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전소유와 전능력을 다 기울여서 나 위해서 섭리하게 하는 것이라 하는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고 확신합시다. 지금은 이것을 믿을 때가 됐습니다. 이제까지는 참 말로만 이렇게 하고 이랬는데 앞으로는 실제로 이 믿는 믿음이 아니면 앞으로 세계를 온 천하를 시험하는 그런 때를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꾸 말씀하시고 난 다음에 요걸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노아 홍수 때에 많은 사람들의 유력과 위인이 많았지만 노아가 전하는 말을 듣지를 안했어. 이랬지만 마지막에 결국은 그대로 홍수 심판이 이르니까 모두 제각각 의뢰하는 게 있어서 뭐 힘도 의뢰할 것, 힘을 의지해서 '저 사람은 오 리 가면 나는 십 리 간다. 이제는 비가 오고 물이 차올라 오니까 도망쳐서 산으로 올라가자.' 다른 사람은 한 발 올라가면 저는 두 발 떼 올라가고 뭐 이만치 힘 있으니까 다 죽어도 나는 안 죽지 싶어서, '내가 또 수영을 잘 하니까, 헤엄을 잘 치니까' 그래 뭐 별것 다 있을 거라. 또 '우리는 배가 있고, 뭐 재산이 있고, 나는 적어도 왕인데.' 별별 있지만 모조리 홍수 속에 다 몰사시키지 안했습니까? 그게 우리에게 하나 큰 계시입니다. 앞으로 불심판도 그렇습니다.
노아가 방주 모아서 뭐 상선에 썼습니까 연락선에 썼습니까? 군함에 썼습니까? 아무 쓴데 없어. 하나님이 심판하는 그 심판을 면하는데 썼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그 멸망을 피하는 거게 쓰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저 밤으로 기도할 때도 중얼중얼하는 것 그런 것 하지 말고, 또 고함 지르는 것도 좋지마는, 가끔 가다 고함도 질러야 돼. 좋지마는, 기도하면 '하나님이 대체 어떤 분입니까?' 이래 가지고 자기가 하나님을 깨달을 때 깜짝 깜짝 놀라지고 두려워지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 담대해지고 평안해지고 이렇게 자꾸 실질적인 그 실감과 실지의 그 실상이 이루어야 되는 것인데 이렇게 말로만 믿는 사람이고 또 입으로만 믿는 사람이고 형식으로만 믿는 사람이지 하나님의 살아 계시는 실지의 효력이 자기에게 오지 않는다 그말이오.
(축도) 주님의 피공로로 인한 성령의 감화 감동을 우리 각자에게 충만시켜 주시옵소서. 지극히 큰 능력으로 오신 진리가 저들을 붙들어 깨닫게 하시고 성령과 진리의 능력이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켜 하늘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바로 가지고 세상을 잘 이용할 수 있게 하시고 악령의 유혹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항상 저희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좋은 말씀이 나올 겁니다. 오후에 그다음에 계속될 것인데 그저 듣기 쉽고 좋은 말씀이 나올 터이니까 오후에 와서 들어야 되지 안 들으면 안 됩니다. 포도나무는 제게 오는 벌거지를 못 죽입니다. 농부가 죽여야 되지. 우리에게 오는 모든 피해들 하나님이 다 제거해 줘야 되지 안 제거해 주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오후에 예배 빼지 말고 주일을 온전히 지켜서 오전 오후를 다 예배 참석하도록 그렇게 하고 또 새벽기도도 나와서 참석하도록 하고 장로님들 집사님들도 먼저 모본이 돼서 새벽기도 나와서 참석해야 되지 뭐 장로라고 무슨 뭐 대단한 사람입니까 뭐 왕이라도 그렇고 대통령이라도 그렇고, 큰 재벌가가 돼도 그렇고, 또 어떤 뭐 박박사가 돼도 그렇고. 하나님 앞에 그런 게 뭘 큰 게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그래도 장로님이면 그 직책을 가지고 새벽기도 꼭 나와야 되겠고 또, 집사님 되면 더 그렇고, 평신도보다는 집사님은 더 그렇고, 집사님보다도 장로님은 더 그렇고, 이래서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믿음 손해보이지 말고 도움이 되도록 그렇게 합시다. 오전에는 꽉 차고 오 후에는 텅 비고. 그 오전 교인, 안 됩니다. 그러면 환난 만납니다.
2013년 8월 24일, 04, A+, Bongwon Yoon, I. 333.